“팔 민간인 보호 안하면 정책 전환”

2024-04-05 13:00:04 게재

바이든, 네탸냐후와 전화통화서 최후통첩 … 구호단체 폭격에 격앙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해 10월 1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환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국제사회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가자전쟁 6개월 동안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미국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입에서 더 이상 민간인 피해를 방치할 경우 정책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지난 1일 국제 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 차량 폭격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통화에서 민간인 보호 등을 위한 즉각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해온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바이든과 네탸냐후의 전화통화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같이 전했다. 바이든은 통화에서 구호단체 폭격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스라엘이 민간인 피해와 인도적 고통, 구호활동가들의 안전을 해결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일련의 조치들을 발표하고 실행할 필요를 강조했다고 커비 보좌관은 소개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이들 조치와 관련한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행동에 대한 평가로 결정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커비 보좌관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이스라엘 측의 몇 가지 실질적인 변화”라며 “향후 몇 시간, 수일 내에 가자로 향하는 인도주의적 지원의 극적 증가, 민간인들과 국제구호단체들에 대한 폭력 감소 등 즉각적 조치들을 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통령이 WCK 호송 차량과 구호단체 직원들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확실히 흔들렸다”면서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자신의 우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강하게 느꼈다”고 소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최후통첩’이냐는 기자 질문에 커비 보좌관은 “대통령은 일이 진행되는 방향에 대한 중대한 우려를 표명했다”며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 지에 따라, 우리 자신의 정책 접근법을 재고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적인 휴전이 인도주의적 상황을 안정시키고 개선하는 한편 무고한 가자 주민들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임을 강조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WCK 차량 폭격에 대해 “격분”과 “비통”을 표한 데 이어, 개전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와 함께 무기까지 공급해 온 현재의 정책에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도 더 이상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 및 지원 일변도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정책 변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보조를 맞췄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 나토 외교장관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WCK 차량 폭격에 대해 “그런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볼 필요가 있는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지금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보호, 인도적 지원 확대, 인도적 지원 제공자들의 안전보장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는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유엔 안보리의 가자 전쟁 휴전 촉구 결의안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을 택해 결의가 통과되도록 하는 등 미묘한 기류 변화를 보였다.

그러나 1일 WCK 차량 폭격 사건 직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은 계속 진행하는 등 근본적인 정책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만족할 만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무기공급 중단 등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바이든의 대선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이 전쟁을 조기에 종료해야 한다고 재차 언급했다. 그는 이날 보수 성향 라디오 휴 휴잇 쇼와의 인터뷰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빨리 끝내라는 말에 더해 더 조언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것이 내 조언이다. 끝내고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그들이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드는지 확실치 않다”면서 “그들은 승리가 필요한데 그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이스라엘 보수 매체 인터뷰에서도 “여러분이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면서 “이스라엘은 전쟁을 끝내야 한다. 이스라엘과 모두를 위해 평화와 일상생활로 돌아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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