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사대국화에 날개 다나

2024-04-09 13:00:01 게재

미·일 정상회담 계기 변화 조짐…미국 '격자형 안보' 구조에 편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가 9일 미국을 공식 방문했다. 그는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일 방위동맹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논의할 예정이다. AP=연합뉴스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려는 일본 보수 강경파들의 움직임에 오는 10~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미일정상회담이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전쟁을 영원히 포기하고 군비와 교전권을 부정하는 이른바 ‘평화헌법 9조’를 거스르려는 일본 보수세력들의 움직임은 날로 커지고 있다.

2022년 12월 일본정부가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통해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능력)을 확보하면서 더욱 노골화됐다. 방위비 대폭 증액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차세대 전투기의 제3국 수출까지 허용했다. 이런 움직임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들과 주변국까지 거들면서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에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과 미·일·필리핀 3자회담 역시 이런 구도를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는 8일 워싱턴 D.C.에서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우리가 다년간에 걸쳐 구축한 ‘거점 중심’(Hub and Spoke)구조는 현 시점에 적합하지 않다”며 “중대한 전환의 시기”를 맞아 “격자형(lattice-like)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매뉴얼 대사는 중국이 “경제적 강압”으로 한일 등 미국의 동맹국들을 고립시키려 시도해 왔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격자형 대응은 동맹·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소다자 협력체를 통해 대중국 견제와 압박의 촘촘한 망을 짜 나간다는 구상이며 이것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방미 외교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시다 총리 방미 계기에 오는 11일 미·일·필리핀 3자간의 첫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한미일 3국 협력에 이어 ‘격자형 안보’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소다자 협의체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 이매뉴얼 대사의 설명이다. 그는 또 “우리는 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을 분리할 수 없다”고 평가하면서 “보호(protection)의 동맹에서 투사(projection·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 힘을 투사한다는 의미)의 동맹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류를 그대로 반영하듯 8일 오커스 국방장관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일본과 첨단군사기술 공동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에 함께 참석한 야마다 시게오 미국 주재 일본대사는 일본이 북일정상회담 개최의 목표로 삼고 있는 핵·미사일과 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 이른바 ‘미해결 문제’의 진전에 대해 북한이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야마다 대사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북한과 건설적인 관계를 수립한다면 그것이 일본과 북한, 그리고 지역의 안정에 이롭다고 믿는다”면서 “그러나 동시에 총리는 모든 미해결 문제에서 진전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매우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북한발로 나온 입장을 보면 그들이 이런 미해결 문제들을 다룰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면서 “우리는 어떻게 일들이 전개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야마다 대사는 “기시다 총리에게 미해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미사일, 핵 문제, 납치 문제 등은 총리에게 지속적으로 매우 중요한 현안”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만약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온다면 총리는 북한 측과 대화를 원할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의 반응을 지켜볼 것”이라고 부연했다.

기시다 총리는 그동안 납북 피해자 문제 등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북한 반응은 냉담한 상황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일본이 납치 문제를 거론하는 데 반발하며 지난달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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