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중동 톺아보기

이스라엘 군 철수 가시화…가자에도 봄은 오는가

2024-04-09 13:00:01 게재

4월 7일로 전쟁 발발 6개월을 넘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종식의 파란불이 켜졌다.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구 남부에서 지상군 병력 상당수를 철수했다. 인질석방 없이는 휴전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전의를 불태우던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한 태도에 비추어보면 이례적인 움직임이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칸 유니스에서 주요 작전이 마무리돼 1개 여단만 남부에 남아 있다”면서도 전투임무 완료 외 다른 철수배경에는 침묵을 지켰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는 ‘군 당국이 미국 요구 때문에 철수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 철수에는 이란의 주시리아 영사관 공습이 작동한 것 같다.

이스라엘의 실착 이란영사관 공격

4월 1일 현지 시각으로 오후 5시경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미사일로 공격, 혁명수비대 모함마드 레자 자헤디 장군을 비롯해 이란인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자헤디는 혁명수비대의 해외작전 최정예부대인 고드스군의 시리아-레바논 사령관이다. 이란은 자헤디를 2020년 1월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사망한 솔레이마니의 과업을 이어 온 명장으로 평가한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이란의 군사시설을 꾸준히 표적으로 삼았지만 국제법상 문제가 되는 외교공관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피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가자지역 병원이나 학교를 하마스의 기지라고 하면서 공격했는데 이번 영사관 공격도 같은 논리를 폈다.

그렇다면 공격의 직접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자헤디가 이란 핵 개발과 관계가 있다’ ‘헤즈볼라를 사실상 지휘한다’ 등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이라크의 시아파 이슬람 저항군에서 날린 드론이 이스라엘 남부 에일라트의 군 시설을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인 듯하다. 이스라엘 군은 격납고가 일부 파괴되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했는데 자세하고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라크의 시아파 이슬람 저항군이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기에 이스라엘은 보복의 칼날을 시리아의 이란 영사관으로 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분노는 폭발적이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엑스(이전 트위터) 계정에 히브리어로 “신의 도움으로 우리는 시온주의자들이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에 ​​저지른 침략 범죄를 뉘우치도록 만들 것”이라고 썼다. 국방장관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대응을 할 것”이라며 강력한 보복을 예고했다. 혁명수비대의 민간 조직인 바시즈(Basij) 학생 대표는 하메네이와 만나 “우리 바시즈 학생들이 이스라엘과 싸울 수 있도록 허용해 줄 것을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청원했다.

이스라엘의 주시리아 이란 영사관 공격은 실착이다. 국제법상 보호를 받는 영사관 공격을 용인할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감싸고돌던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이 이란 영사관을 공격한 지 나흘 만인 5일, 에콰도르정부가 전직 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자국 주재 멕시코 대사관에 강제 진입하자 7일 미국은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 준수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외교공관 강제 진입보다 더한 공습을 미국도 선뜻 변호하긴 어렵다.

이란도 보복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려

이란은 국가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이스라엘에 보복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진 이후 이란은 줄곧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한다고 여겼다. 하마스를 치는 김에 헤즈볼라까지 정리하려는 심산으로,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을 미국의 도움으로 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란이 그동안 전략적 침묵을 지킨 이유다. 아울러 미국에는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을 돕지 말라고 경고했다. 만일 미국이 참전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막겠다고 했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전쟁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이란의 참전으로 확전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이란과 대화의 창을 열어 확전을 막고자 노력했다. 11월 대선이 코 앞인데 전선을 더 넓힐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이란 영사관 공격으로 확전의 가능성이 열리자 미국은 다시 재빠르게 나섰다. 먼저 이란에 미국의 공격이 아니라고 밝혔고, 보복 공격 시 미군을 대상으로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이란은 미군은 보복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고 응답했다. 미-이란 간 군사적 갈등으로 확전하는 것을 양측이 급히 원천차단한 것이다.

미국이 이란에 미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말은 ‘미군만 다치지 않으면 보복 공격이 가능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란의 보복 선택지로는 어떤 목표물이 가능할까? 미국 정보당국은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스라엘의 해외 시설도 타격 가능한 목표다.

이스라엘은 서둘러 해외공관에 경계령을 내리고 중동 지역 내 외교관을 급히 철수시켰다. 만일 해외 시설이 타깃이라면 이란은 국제법으로 보호받는 이스라엘 외교공관 대신 다른 시설을 공격할 것이다. 그런데 해외 시설 공격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해당 국가와 불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선택지는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골란고원이다. 골란고원은 국제법상 시리아령이지만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공격해도 시리아와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에게 전쟁 종식 선택권 넘긴 이란

그런데 이란 언론 자데예이란에 따르면 이란은 미국이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영구 휴전을 보장하고 이스라엘이 라파를 침공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했다고 한다. 미국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안이다. 유엔에서 3번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미국은 3월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즉각 휴전 결의안에는 반대없이 기권해 결의안 채택에 기술적으로 찬성했다.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도 바이든을 “학살자 조(Genocide Joe)”라고 부르는 비판민심을 더는 지켜만 볼 수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공격을 받은 이란이 다시 전략적 인내심을 발휘하며 이스라엘-하마스 영구 휴전과 라파 지상전 포기를 공식적으로 보장하면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미국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선택권을 준 셈이다. 자데예이란 보도가 인용한 이란측 말마따나 ‘미국이 상황을 억제하는 데 성공한다면 바이든정부에 큰 성공이 될 것’이다.

만일 6개월 넘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이란측 요구대로 끝난다면 진정한 승자는 이란이 될 것이다. 수치심을 억누르고 전략적 인내심으로 확전을 막았을 뿐 아니라 휴전, 더 나아가 종전을 끌어낸다면 국제사회와 무슬림 세계는 이란의 위상을 새롭게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라도 이란의 요구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고 전쟁이 다시 확대된다면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시아파 저항군뿐만 아니라 예멘의 후티가 가담해 중동 전역이 불바다가 될 수도 있다. 이미 후티는 40만명의 후티군이 이란을 도와 참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확전은 상상조차 하기 끔찍하다. 에너지 운송로가 막혀 세계 경제는 마비될 게 뻔하다.

전쟁은 끝나야 한다. 이스라엘이 정당방위를 주장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1000명이 넘는 고아들은 훗날 하마스가 될 것이다. 11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정의로운 전쟁을 인정했고 이는 1095년 십자군전쟁의 밑바탕이 되었다. 십자군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추악한 십자군전쟁을 뒤따를 것이다. 총성을 멈추라. 그것이 바로 정의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