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루피 국제화 원하지만 갈길 멀어

2024-04-09 13:00:01 게재

영 이코노미스트지

“일본식 개혁 필요”

세계 5위 경제국인 인도가 자국통화 루피의 국제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개혁 등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이달 1일 열린 인도중앙은행 창립 90주년 기념식에서 “루피화 국제화를 높이는 데 집중해달라”고 주문했다. 인도경제는 세계에서 다섯번째 큰 규모임에도 국제 통화거래에서 루피화 비중은 2% 미만이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 EPA=연합뉴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하던 70여년 전만 해도 인도 루피화는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등 중동 여러 나라에서 통용되던 화폐였다.

미국 달러가 명실상부한 기축통화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국제적 역할을 하는 통화도 많다. 유로, 영국 파운드, 스위스 프랑, 호주·캐나다·홍콩·싱가포르 달러 등이 그 예다. 이들 통화는 전세계 외환보유고와 개인 포트폴리오에 포함돼 있다. 무역과 금융 거래에 모두 사용된다. 이론상 루피화가 이 그룹에 합류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널리 사용되는 통화를 보유하면 이점이 상당하다. 해외투자자들의 수요가 크면 해당국 기업들은 외화로 차입할 필요가 없어 자금조달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수출업체와 수입업체의 환 리스크가 줄고, 정부도 외환보유고 규모를 낮출 수 있다.

인도의 경우 루피화 국제화의 초석이 마련되고 있다. 지난해 9월 JP모간체이스는 신흥시장지수에 인도국채를 편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도 지난달 같은 결정을 내렸다. 지난 1년 동안 달러 기준으로 37% 상승한 인도증시의 폭발적인 성과는 전세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22개국 은행에서 일반적인 환전 한도 없이 루피로 표시된 특별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지난해 8월 인도는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와 사상 처음으로 석유를 루피로 결제했다.

하지만 중국은 인도가 얼마나 많은 개혁을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중국정부는 지난 10년 넘게 위안화를 글로벌 통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중국은 전세계 GDP의 17%를 차지하고 있지만 결제네트워크인 스위프트(SWIFT)를 통해 이뤄지는 국제무역에서의 비중은 3%를 밑돈다. 게다가 이같은 거래의 80%가 홍콩에서 이뤄진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중국의 자본계정은 투자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게 한다. 위안화의 광범위한 사용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이다. 인도의 자본계정이 예전보다는 덜 폐쇄적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다른 글로벌 통화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인도가 지향해야 할 대상으로 일본이 더 좋은 사례라고 꼽았다. 일본은 1970년 전세계 GDP의 7%를 차지했다. 현재의 4%보다 높았다. 당시 일본기업들은 해외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1970년 일본 수출품의 엔화결제 비중은 1%에 불과할 정도로 낮았다.

하지만 이후 10년 큰 변화가 일었다. 1980년대 초 엔화 결제비중이 40%에 달했다. 1989년에는 글로벌 외환거래에서 엔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달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16%를 차지하고 있다.

엔화 국제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일본정부는 금융시장을 개혁해야 했다. 외국인의 광범위한 자산 보유를 허용하고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또 자본 흐름과 금리에 대한 규제를 철폐했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의 수출중심 경제모델을 위협했고 일본 관료들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국제적 통화를 보유하고자 하는 나라들은 일본과 같은 광범위하고 불편한 변화를 이뤄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를 감당할 국가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실 미국의 압박과 관세 위협이 없었다면 일본 스스로 그같은 개혁을 단행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은 인도에 같은 방식을 쓸 것 같지 않다. 인도가 루피 국제화를 이루려면 내부적으로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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