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공간에서 시민 휴식처로 … 선원전 터 8월까지 문 ‘활짝’

2024-04-26 13:00:01 게재

문화재청, 2030년 복원 공사 전까지 ‘도심 속 휴식 공간’ 활용 계획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을 이봉할 날이 가까워져 왔으니 슬픈 감회와 기쁜 생각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고종실록 1897년 6월 19일 기사)

1897년 고종(재위 1863~1907)은 지금의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긴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즉위를 준비하던 그는 선원전을 지을 것을 명한다.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시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과거 ‘영성문 대궐’로 불리며 덕수궁 안에서도 중요한 영역으로 여겨졌으나,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사라졌다. 그 선원전 터 일부가 26일부터 시민들에게 열린다. 개방을 하루 앞둔 25일 오후 찾아간 선원전 권역은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었다.

기존에는 선원전 터 주변으로 높은 가림막이 있었으나, 이날은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건너편 입구로 들어서자 너른 공간이 보였다. 입구도 훨씬 넓어졌다.

현장의 한 관계자는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건너편과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는 정동공원을 잇는 좁은 길을 가리키며 “‘고종의 길’ 바로 옆부터 완전히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개방되는 선원전 영역은 약 8000㎡로 잔디가 깔린 공터에서는 자유롭게 산책하거나 잠시 앉아 쉴 수 있다. 선원전 건물과 관련한 발굴 조사를 마친 구역이다.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도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1920년대 일제가 덕수궁 선원전 일대를 훼철(毁撤·헐어서 치워 버림)한 뒤, 그 자리에는 조선저축은행 사택,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 등이 들어선 바 있다.

사택 주변에 벤치를 만들었고, 나무와 화초 등 조경도 신경 쓴 듯했다.

다만 내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사택 내부를 정비한 뒤 올해 7~8월에 회화나무 등을 다루는 반짝(팝업)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기존의 가림막 대신 새로 도입된 ‘아트펜스’는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남측과 북측 경계에 설치된 이 가림막은 이명호 작가가 선원전이 조성되기 훨씬 전부터 자리했다고 전하는 ‘터줏대감’ 회화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색의 선을 교차해 디자인한 것이다.

이 작가는 “회화나무는 우리 근현대사를 묵묵히 지켜본 살아 있는 증거”라며 “수직적 시선과 수평선 시선이 교차하듯 과거와 현재가 만나 미래를 그린다는 개념이 핵심”이라고 전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주변을 지나던 직장인들은 달라진 모습에 놀라워했다.

평일 기준으로 하루 1500~2000명이 ‘고종의 길’을 오갔으나, 이날은 기념행사가 열리기 전인 오후 1시 무렵에 약 1400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직장이 인근이라 평소 자주 산책한다는 김모 씨는 “펜스 너머로 이런 공간이 있었는지 몰랐다. 오랜 기간 공터처럼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쉼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원전 일대는 올해 8월 31일까지 둘러볼 수 있다. 올해는 시범적으로 임시 개방하며, 내년부터는 계속 열 예정이다.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덕수궁 복원 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흥덕전과 흥복전을 먼저 복원한 뒤 선원전은 2030년께 복원에 나설 예정이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한시적 개방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선원전 터를 개방하기까지 많은 협업과 노력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궁·능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우리 고유의 가치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김예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