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작가 작품으로 도시 전체가 미술관

2024-04-26 13:00:01 게재

서초구 ‘정류장·분전함 갤러리’ 눈길

동네 카페도 전시·판매 지원에 동참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랐어요.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서 자연과 함께 아이들의 즐거운 순간을 담았습니다.” “동물과 사람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잖아요? 다른 생물이지만 같은 미래를 보고 희망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마을버스 승차대와 분전함에 작품을 내건 작가들과 구 관계자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서초구 제공

서울 서초구 방배동 주민이자 20·30대 청년 예술가인 김도영 작가와 최선우 작가가 각각 자신의 작품인 ‘돌다리를 건너는 아이들’과 ‘같은 시선’에 대한 설명을 들려준다. 맑은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 곤충채집을 가는 아이들, 소년과 품에 안긴 고양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두 작품이 내걸린 곳은 실내공간이 아니라 서초구 거리 한 복판이다. 지하철 7호선 내방역 인근 서초대로에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과 분전함이 작품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난 참이다.

26일 서초구에 따르면 구는 청년 작가들 작품을 거리 곳곳에 내걸어 도시 전체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상업광고가 내걸리던 마을버스 승차대 광고판이, 전력 회로를 제어하는 설비를 담은 분전함이 작은 갤러리가 됐다. 청년들은 공공과 함께하는 전시 기회를 얻고 주민들은 일상에서 예술을 접하는 효과가 있다. 도시 환경이 한결 정돈되는 건 덤이다.

‘서리풀 정류장 갤러리’라 이름 붙인 마을버스 승차대는 총 20곳이다. 기업 등에서 100만원 가량 광고비를 내고 확보하는 공간인데 광고대행사와 협업해 무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분전함은 통상적인 철제가 아니라 원목 느낌을 주는 형태로 디자인을 통일하고 앞부분에 미술 작품을 내걸 수 있는 공간까지 별도로 마련했다. 지난해 방배역부터 내방역까지 26곳에 이어 올해는 함지박사거리까지 16곳을 추가로 단장한다.

마을버스 승차대와 분전함의 변신은 2019년부터 추진해온 ‘청년갤러리’ 사업 일환이다. 청년예술가와 동네 카페를 연계해 작품을 전시·판매해왔는데 5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전시공간을 확대했다. 청년예술가를 대상으로 가장 희망하는 지원책을 물었는데 전시공간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차수현 청년정책팀장은 “버스를 기다리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작품을 감상하면 느낌이 달라질 것”이라며 “도시 미관을 해치는 분전함을 주변 환경과 조화로운 시설물로 바꿔 평범한 거리를 문화예술공간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년 가로행정 교통 등 여러 부서와 카페 광고대행사 등 민간까지 협업한 결과물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거리 미술관을 빛낼 청년들 작품은 공개 모집으로 선정했다. 지난 1월 60명을 모집했는데 총 160여명이 지원했다. 작가들은 구와 논의해 각 3점씩을 내놨고 연말까지 총 3회에 걸쳐 전시하게 된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청년작가 290명이 작품 858점을 전시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 중 41점은 전시 후 판매돼 작가들이 2300만원 가량 수익을 얻기도 했다. 그만큼 작가들 호응도 크다. 올해 첫 전시기회를 얻었다는 최선우 작가는 “일반 전시장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승차대나 분전함은 많은 시민들이 거리를 걸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더 좋다”고 말했다. 회사원에서 예술인으로 전환한 김도영 작가도 “정류장은 기다리는 공간이라 시민들이 여유를 갖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초구는 주민들 요청이나 환경개선이 필요한 지역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청년 작품을 내걸 방침이다. 전성수 서초구청장은 “청년작가 작품전시를 적극 지원하고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도시를 완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김진명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