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공부 대신 ‘뚝딱뚝딱’ 제빵·게임까지

2024-05-03 13:00:02 게재

영등포구 선유도서관 ‘사이로’ 눈길

“아이들·도서관 미래 바꾸는 새 모형”

“집에서는 어지럽힌다고 엄마가 싫어해요. 여기는 재료도 다양하고 마음껏 만들어 볼 수 있어요.” “게임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기계랑 할 때는 실력평가가 안돼서 자존감이 낮았거든요. 친구들이 잘한대요.”

최호권 구청장과 선유도서관 관계자 등이 아이들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대에 있는 작품 모두 이용자 작가들이 만들었다. 사진 영등포구 제공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선유초등학교 6학년 해림이와 가현이.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매주 두세차례 찾는 공간이 있다. 학교 지근거리에 있는 선유도서관이다. 서가나 책상에 앉아 얌전히 책을 읽는 게 아니다.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거나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본다. 두 아이는 “활동할 거리가 엄청 많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노는 게 최고다.

3일 영등포구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선유도서관을 재개관하면서 마련한 12~16세 특화공간 ‘사이로’가 인기다. 총 5층 가운데 2층과 3층을 할애했는데 여느 도서관과 달리 하교시간을 기다리고, 학원을 미루며 찾는 아이들이 많다. 해림이와 가현이만 해도 재개관 두달만에 각각 10~20차례나 찾았고 매번 2~3시간, 길게는 5시간까지 공간 구석구석을 즐긴다.

사이로는 도서문화재단씨앗에서 2018년부터 추진해 온 ‘도서관 속 트윈세대 전용공간 프로젝트(space T)’ 일환이다. 전국에서 6번째인데 서울에서는 처음 선을 보였다. 트윈세대는 10대(Teenager)와 ‘사이’(Between)를 합친 말로 어린이라기엔 크고 청소년이라기엔 아직 어리지만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구체적인 취향을 갖기 시작하는 전환기를 의미한다. 12~16세,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다.

씨앗은 기획과 공간설계 시공 등을 맡았고 10억원 기금까지 보탰다. 영등포구는 개관 15년이 지나 노후화가 시작된 데다 다양한 활동공간이 없던 선유도서관을 제시했다. 씨앗과 도서관 측은 물론 구 미래교육과에 실제 공간을 이용할 아이들까지 머리를 맞댔다. 설문조사와 심층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이 선호하는 취향을 파악했고 시공사와 회의를 통해 공간 구성에 반영했다. 도서관 관계자는 “집과 틈이라는 두가지에 주목했다”며 “거실은 부모에 내주고 방은 형제자매와 공유하기 때문에 집중할 곳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틈을 통해 서로의 활동을 보면서 공유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같은 도서관이지만 2층부터 3층까지 복층으로 조성된 사이로에는 별도 출입구가 있다. 보호자나 다른 연령대는 입구까지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공간 배치도와 함께 관련 정보를 게시했고 매달 한차례 보호자나 관련 기관을 초청한다.

사이로에서는 도서 대출과 반납 대신 각종 활동이 가능하다.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상상을 작품으로 옮기는 만들기가 가장 인기. 평상에 앉아 만화·영화를 보거나 게임하기, 사진·영상촬영을 배우고 빵·과자나 나만의 책 만들기, 음악 연주와 작곡도 있다. 3월 한달간 연인원 1563명이 각 공간을 즐겼다. 이들 모두 ‘작가’다.

외부 광고부터 내부 구성까지 시내·시외버스를 그대로 축소해 만들고 있는 지후도 대표 작가다. 어머니 김나현(40·양평동)씨는 “전에는 놀이터에서 놀거나 먼 곳까지 방문했는데 요즘은 사이로에 살다시피 한다”며 “2학년인 동생이 못 들어가서 불만인데 대신 리모델링한 다른 공간을 혼자 즐긴다”고 전했다.

영등포구는 첨단기기를 통한 미래과학체험 과정을 운영하는 등 아이들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고 각각의 재능을 깨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사이로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처럼 아이들 영감을 자극하고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곳”이라며 “선유도서관은 앞으로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선도적 모형”이라고 강조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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