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기획 | ① 영국 샌즈스쿨(Sands School)

"12억 학교예산·수업계획, 아이들이 직접 짠다"

2014-09-29 00:00:01 게재
지난 8월 샌즈스쿨 학생들이 실리 제도의 브라이어(Bryher) 섬에서 여름캠프를 벌이고 있다.

 

샌즈스쿨은 학생을 감독하거나 행동을 규제하지 않는다. 대신 학생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6명의 학생으로 자치위원회를 구성해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사진 샌즈스쿨 홈페이지

 

1987년 설립된 영국 대번(Devon)주의 샌즈스쿨은 매우 작은 규모의 학교다. 80명의 학생과 21명의 교사가 있는 샌즈스쿨은 국가의 지원 없이 독립적인 사립 대안학교 형태를 유지하는 곳이다.

25~26일 교육부가 주최한 '대안교육 국제포럼'에 참석한 이 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인 션 벨라미(Sean Bellamy) 씨는 "1990년대 정부 지원금을 받았더라면 아마도 의무교육과 교장선임, 아이들 지원과 관련해 커다란 제약을 받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영국의 공립학교 시스템은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팽배한 냉소주의 △높은 결석률 △참여활동 저조 △서유럽 내 최악의 문맹률 때문에 지속적으로 쇠락해 왔다. 반면 샌즈스쿨로 대표되는 소교모 대안학교들은 학교 안팎의 호평을 받으며,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해 가을 학교 감독기구인 영국교육청(OFSTED)은 샌즈스쿨을 감사한 뒤 "아이들의 성장과 복지에 '훌륭한 교육'을 제공해 창의적이고 자신감 있는 성인으로 키워내는 교육기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영국 내 모든 학교 가운데 30%만 '만족스럽다'는 평가결과를 받은 현실을 고려하면 소규모 대안학교인 샌즈스쿨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구체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을 참여시켜 학생들의 사고력과 토론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 △학생의 학업 능력 발달을 촉진하는 교내 민주적 시스템을 정착시켰고, 그 결과 학생들이 탁월한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 받았다.

이는 영국 교육사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벨라미 교장은 "교육청 감사에서 샌즈스쿨이 '양호한 관리' 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 받았는데, 이는 영국 역사상 최초로 학생들이 학교의 성공적인 운영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교육부가 인정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샌즈스쿨의 설립자이자 교장인 션 벨라미(Sean Bellamy) 씨. 김은광 기자

"아이들에 맡겨라, 훌륭한 학교가 될지니"

87년 개교 당시 샌즈스쿨의 연간 총수입은 9만8000파운드(1억6700만원), 교사 1인당 급여는 연 1만2000파운드(2046만원)에 불과했다. 학교가 곧 문을 닫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퍼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한 교사들의 개인적 희생을 바탕으로 안정적 성장을 지속해 지난해엔 75만파운드(12억8000만원)의 재정규모를 이뤘다.

교사의 퇴직률도 낮다. 벨라미 교장이 26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3명의 교사가 23년 근속을 기록하고 있다. 전체 교사의 평균 근속기간이 15년이다. 벨라미 교장은 "조기 은퇴와 승진, 높은 보수를 추구하는 현재의 영국 교육현실에 비춰볼 때 샌즈스쿨의 사례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말했다.

샌즈스쿨은 두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 그리고 물리적 공간의 변화다.

인간관계 측면에서 샌즈스쿨은 수평적 관계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교사 임명이나 예산 관리, 교습안 작성, 교내 교율 등을 교사와 아이들이 동등하게 관리한다. 즉, 위계적 질서구조가 없다.

교복이 없다거나 교사 학생 구분없이 서로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점,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자신들만의 진도에 따라 공부한다. 예를 들어 15세 학생이 12세 학생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13세 학생이 16~19세 학생의 진도를 따라간다.

샌즈스쿨은 국가단위로 시행하는 시험으로 학생들 수준을 비교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벨라미 교장은 "숙제의 양은 매우 적으며 학생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수업에 참여하거나 놀거나 또는 서로 대화하는 데 쓴다"며 "학생들은 자유롭게 동네에 나가 가게를 구경하기도 하고 점심을 사먹거나 스케이트를 타며 논다"고 말했다.

샌즈스쿨은 학생들을 잡아놓고 감독하거나 행동을 규제하지 않는다. 대신, 학생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학생 회의에서 선정된 6명의 학생으로 자치위원회를 구성해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학생들은 어른들에게 참석을 요청할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학생들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어른들은 학생들이 결정한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가질 수 없다.

벨라미 교장은 "우리는 아이들이 적절한 수업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아이들에게 스스로 결정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기회를 제공해보라, 그러면 훌륭한 교육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신적 결석, 샌즈스쿨에선 딴나라 얘기

두 번째 특징은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 학교 건물 구조다. 이는 교육의 산업화나 규모의 경제를 통해 아이들을 '최종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거대 학교의 이미지를 단호히 배격하기 위해서다. 벨라미 교장은 "좋은 학교를 원한다면 우수한 교사나 전자칠판, 좋은 책상만을 찾으면 안된다"며 "점심 요리와 향긋한 커피향, 그리고 토스트 냄새가 아이들의 학업을 방해할 만큼 자그마한 공간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샌즈스쿨은 10여명의 학생들만이 들어갈 만한 공간 여러곳에 소파와 카펫을 배치하고 있다. 학생들은 카펫에 편하게 누워 수학문제를 푼다. 어려운 수학문제는 종종 누워서 풀 때 잘 풀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아이들이 복도를 마음껏 뛰어다니도록 허용한다. 복도를 뛰어다니는 것은 인생의 골칫거리에 대한 최선의 해독제라는 믿음 때문이다.

벨라미 교장은 "학교 건물의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도달하는 데 2분 거리 미만의 규모가 가장 이상적인 크기"라며 "오늘날 일반교실에서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교육을 받고 멍하니 공상에 잠기는 '정신적 결석'을 경험하는 것과 달리 샌즈스쿨에서는 능동적 교육 참여가 이뤄지고 이에 따라 출석률이 개선돼 교육의 질이 높아지는 모범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자신했다.

벨라미 교장은 "아이들 스스로가 연간 재정 규모 75만파운드(12억8000만원)의 학교를 운영할 만큼 신뢰할 수 있으며 충분히 영리하다는 것을 전 세계 교육기관에게 입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대안교육제도 = 대안교육 제도는 영국의 4개 국가가 다르다. 영국 에딘버러대학의 매클러스키(Gillean McCluskey) 교수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경우 퇴학생이나 질병 및 다른 이유로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적절한 교육을 마련한 책임을 지자체에 지우고 있다. 지자체는 대안교육의 한 부문인 '위탁학생교육기관'을 설립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국가의 직접 지원을 받는 모든 대안교육시설은 한 곳당 8000파운드(1364만원)의 기본자금을 받고, 학생을 위탁한 지자체나 학교로부터 입학학생 당 지원금을 받는다. 각 학생 당 추가 지원금액은 지자체마다 다르다.

북아일랜드는 '학교 외 교육'이라는 명칭으로 대안교육을 시행한다. '학교 외 교육'은 4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학생을 위한 가정이나 병원 수업 △집에서 교육받는 학생들 △학령기 엄마들을 위한 대안교육시설 △일반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의무교육 학령의 청소년을 위한 대안교육시설 등이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정식 대안교육시설은 없다. 적은 수의 특수학교가 있고, 이들 중 대다수는 사회적, 정서적, 행동적 장애를 지닌 학생들에게 학교교육을 제공한다. 모든 시설은 지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중앙정부의 감사를 받는다.

웨일즈의 대안시설(위탁학생교육기관)은 학습자의 수와 유형, 일반적인 재학 기간, 전출입 준비, 교과과정의 성격 및 수업일수 등에서 다양한 형태를 띠지만, 법적 요구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안시설은 가능한 한 과도기 교육을 제공해 학습자가 다시 일반학교나 직업교육칼리지 등에 원활히 복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는 일반학교와 관련 기관, 직업교육칼리지가 연합한 컨소시엄에서 배출된다. 대안시설마다 수업료가 다르지만, 시설과 관련한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모든 대안시설은 정부에 등록해 '교육훈련감사단'의 감사를 받는다.


[대안교육 기획]
① 영국 샌즈스쿨(Sands School) | "12억 학교예산·수업계획, 아이들이 직접 짠다" 2014-09-29
② 미국 메트스쿨(The Met School)과 빅 픽처 러닝(Big Picture Learing) | 한번에 한 아이씩 가르치는 '눈높이 교육' 2014-10-06
③ 독일 발도르프 학교와 자유대안학교 | "대안교육, 안하니까 못한 것 … 우리에겐 도전이 필요하다" 2014-10-13
④ 덴마크 헤스테하베 자유학교 | "고정된 학습법은 없다 … 개성이 다르니까" 2014-10-20
⑤ 한국 대안교육 발전동향과 정책현황] "대안교육, 자율과 책임의 최적점 찾아야" 2014-10-28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