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기획 | ③ 독일 발도르프 학교와 자유대안학교

"대안교육, 안하니까 못한 것 … 우리에겐 도전이 필요하다"

2014-10-13 00:00:01 게재
지난달 1일 라이프치히 자유대안학교 2014~2015학년 신입생들이 학부모, 교사와 함께 파크 애비뉴를 거쳐 등교하고 있다. 사진 라이프치히 자유대안학교 홈페이지

 

괴팅겐 발도르프 학교 강당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 괴팅겐 발도르프 학교 홈페이지

 

독일의 대안 교육은 크게 두 가지 뿌리에서 시작됐다. 그중 하나가 1920년대의 교육개혁 운동으로 촉발된 발도르프 교육이다. 두 번째는 1960년대 말 유럽을 휩쓴 학생운동으로 촉발된 자유대안학교다. 두 흐름의 차이를 말한다면, 발도르프 학교는 제도권 교육에 비켜서 있다가 제도 곁에 들어온 고전적인 대안 학교로 볼 수 있다. 즉, 국가에서 승인한 대안 독립학교다. 반면 자유대안학교는 제도 밖에서 새로운 교육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실험학교운동이다. 지난달말 교육부 주최로 열린 '대안교육 국제포럼'에서 독일 라이프치히 자유학교와 프랑크푸르트 자유 발도르프 학교 관계자들이 각각 자신의 대안교육을 소개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발도르프 학교는 현재 독일 232개교를 포함해 미국과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1026곳에 달한다. 우리나라에도 10곳의 발도르프 학교가 있다.

지난달 말 교육부 주최 '대안교육 국제포럼'에 참가한 울프 사가우 프랑크푸르트 자유 발도르프 학교 교사는 "발도르프 학교의 태동은 유럽에서 약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과 때를 같이한다"며 "세상을 변화하기 위해 인류는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흐름 속에 발도르프 학교가 설립됐다"고 말했다.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 박사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발도르프 교육은 커리큘럼이 아니라 아동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출생에서 21세에 이르기까지 7년씩 세 단계로 나누어 사고와 감정, 의지를 주요지표로 삼는 방식이다.

첫 번째 시기는 아이들의 치아가 자리잡는 7세까지로, 아동에게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고력이 나타나는 때다. 그 다음 7년은 사춘기까지의 기간으로, '영혼과 육체'가 탄생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 학생들은 '판단력'과 '자유로운 정신'을 개발한다. 마지막 21세까지는 스스로 결정한 '자아'가 더욱 각성되는 시기다.

4학년까지 TV 시청 제한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7~14세 아이들에게 예술을 통해 풍부한 감성을 키워주고, 그 이후에는 사고 발달에 중점을 두어 학습시키고 있다. 모든 수업에 그림과 음악, 율동 등을 섞어 수업 전체를 예술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사가우 씨는 "아동들의 자기 판단력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그림으로 나타내는' 교육이 중요하다"며 "아이들이 그림을 통해 사실을 습득하고, 이에 따라 경험과 실제 이미지에 기반해 스스로 사물의 본질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교육 과정은 1학년부터 13학년까지며, 한 학년은 보통 1개 학급당 30~40명의 학생들로 구성된다. 1~8학년까지 담임과 학생이 바뀌지 않으며, 유급이 없는 점이 특징이다.

8학년이 되면 나무로 숟가락 주걱 접시를 만들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스케이트보드나 의자, 탁자를 만든다. 졸업 시즌의 아이들은 옷장 침대는 물론 기타와 바이올린 등 악기를 제작해 연주할 정도가 된다고 한다.

교사와 학생들은 면이나 마 등 천연섬유로 된 옷만을 입는다. 1학년 때부터 배우는 피리도 나무로 만든 것이며, 장난감도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나 나무, 나비 등의 자연물로만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이 보고 만지고 듣는 것 모두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로 발도르프 학교는 모든 수업에서 자연적인 재료만 고집한다.

특징적인 것은 아이들이 4학년이 될 때까지 TV 보는 것을 제한 받는다는 점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TV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면 학부모를 불러 경고할 정도라고 한다.

학업성취도 측면에서 발도르프 학교가 국내외적으로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일까. 사가우 씨는 "졸업시험 성적은 항상 국가 평균 이상으로, 올해엔 '최고의 고등학교'로 선정된 바 있다"며 "지난 2006년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발도르프 학생들은 OECD 평균 이상을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아동은 자기결정권 가진 독립주체

독일은 교육 부문을 주가 관장하고 철저히 공교육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마다의 사회, 문화, 역사적 특성을 살린 다양한 교육정책을 펴 나가기는 하나 그 역시 주가 중심이 되는 일종의 '다원적 중앙집중식'의 교육 구조를 고집한다. 발도르프 학교 등 사립학교 등이 조금은 제도의 틀에서 비켜 서 있기는 하나 교육과정 등의 통제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교육 관행에 억눌려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교육의 실험은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웠다는 게 자유대안학교 운동의 평가다.

'자유대안학교'라고 이름붙힌 이 학교들은 70년대 초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자유대안학교는 1974년 설립된 프랑크푸르트 자유학교다. 하지만 정부는 이 학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학부모들은 12년 간에 걸친 수 차례의 법정 다툼 끝에 정부 승인을 얻게 됐다. 브레멘이나 카셀, 뷔르츠부르크에 위치한 대안학교들도 비슷한 경험을 겪어야 했다. 갖은 재판을 통해 인가를 받으면 보수 정권이 들어서서 인가를 취소했고, 또 다시 재판을 거듭해야 했다.

헨릭 에벤벡 라이프치히 자유대안학교 교사는 "자유대안학교들은 불법 운영이라는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곤경을 겪곤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1988년 자유대안학교 협회가 설립돼 고립됐던 학교들은 서로 지원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정부와의 법정 소송에서도 모범사례를 교환했다. 자유대안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단체가 교육방향·재정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에벤벡 씨는 "현재 협회에는 약 100개의 자유대안학교가 있으며, 전체 학생 수는 약 6300명에 달한다"며 "독일 전체 학생 수 840만명에 비해 매우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교육과 관련한 변화 과정을 촉진했다는 점에서 밀가루 반죽의 '누룩'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유대안학교 운동의 교육 비전은 무엇인가. 우선 오늘날의 문제, 예를 들어 환경과 평화, 빈곤의 문제는 민주적인 방식으로만 해결될 수 있고, 이를 실천하고 실험해보는 공간이 바로 대안학교라는 믿음이다. 또 아동기를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라 자기 결정의 권리와 행복,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독자적인 삶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어린이를 규제하고 통제하려는 모든 강제적 수단을 포기한다. 대신 어린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사와 함께 학습내용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면 교육 과정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에벤벡 씨는 "학창 시절 내내 동독의 교육 제도 아래서 사회주의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던 내가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그 기반을 잃어버렸다"며 "마찬가지로 수학과 물리를 중요한 과목으로 여기고 미술과 음악을 중요하지 않은 과목으로 여기는 획일화된 교육과정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10년 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지금 교실에 있는 학생이 그때에 실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따라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재능이 있으며 정말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일률적인 교육과정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에벤벡 씨는 로마 정치가 세네카의 말을 인용, "(대안교육이) 너무 어려워서 도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워 보이는 것"이라며 "아무리 긴 여정이라도 첫 걸음부터 시작한다. 우리에겐 단지 도전이 필요할 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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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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