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떼먹는 부모 … 벼랑끝에 선 아이들

2016-03-21 10:20:20 게재

이행신청, 1년 만에 3만건 넘어 … "비양육부모와 자녀관계 개선, 자발적 지급 유도해야"

#김지영(가명·32)씨는 지난 2014년 이혼하면서 전 남편에게 자녀 1인당 양육비로 월 40만원씩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남편은 8개월 정도 양육비를 줬을 뿐 연락을 끊어버렸다. 김씨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척추골절을 입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기도 어려운 처지다.

그는 "홀로 자녀 2명을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서 전 남편에게 양육비를 받고자 안 해본 게 없었다"며 "어렵게 찾아간 변호사들이 '그냥 전 남편에게 아이를 넘겨라'라고 말을 할 때는 정말 절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비양육부·모 때문에 고통 받는 아이들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아도 '주다말다' 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아예 연락을 끊은채 '나몰라라'하는 비양육부·모들도 상당수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추심지원팀 직원이 17일 양육비를 청구하기 위해 방문한 내담자와 상담하고 있다. 사진 여성가족부 제공

양육비를 받아달라며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만 해도 벌써 3만6023건(2월말 기준)이나 된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출범한 지 1년 밖에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전화 상담만 하루 평균 143건, 올해 인력이 63명으로 늘어났지만 수요를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양육비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상담, 협의, 소송 및 추심, 양육비 이행 등 맞춤형 지원을 해주는 기관이다.

"기초생활지원 못받을까 이행신청도 주저"=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양육비 지급으로 도움을 요청한 이들 중 여성은 약 86%였다. 신청자 자녀의 평균 연령은 12세로, 적어도 7년간은 안정적인 양육비 지급이 필요하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상담을 신청한 양육부·모의 자녀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11~15세로 33.9%였다. 이어 16~19세 31.7%, 6~10세 27.3%, 0~5세 7.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올해 2월말 기준,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신청이 접수된 사건들 중 양육비 이행이 성립된 경우는 2837건이다. 실제 양육비가 집행된 금액만도 38억3648만원에 달한다.

김지영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으로 전 남편의 급여에서 강제적으로 양육비를 떼서 받고 있다"며 "친정부모는 물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하나도 없었는데,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김씨처럼 비양육부·모에게 양육비 지급 요청을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지난 2011년에 협의이혼을 한 이소연(가명·48)씨는 지체1급 장애인으로 딱히 생계 수단이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자녀 둘을 키우기가 쉽지 않았지만, 양육비 지급 요구를 하기를 꺼려했다.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지급받을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배제, 아이를 키우기가 더 힘들어 질 것을 두려워해서다. 양육비 액수가 미미해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탈락하진 않더라도 소득이 늘어난 만큼 수급액이 깎이는 구조 때문에 양육비를 포기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당연히 요청할 수 있는 권리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에 관련 사항을 문의했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큰 틀을 깨버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며 "좀더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항이 있는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비양육부·모와 자녀 관계 지원 프로그램 시범 운영 = 전문가들은 양육비 문제를 부부간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비양육부모와 아이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또 다른 가족 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게 향후 과제라는 게 중론이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육비 이행률을 높이기 위해서 채무자 출국 금지 등 제재 조치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조치가 필요하다"며 "아이는 계속 성장해 가고, 양육비는 1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지급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자발적인 이행을 끌어낼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양육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의 질이 높아질수록 양육비지급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이윤 건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비양육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의 질 향상은 비양육부·모의 자녀 양육 의지를 높여서 자녀양육비 지급을 높인다는 것은 이론은 물론 경험적 연구들을 통해 이미 많이 검증되어 왔다"고 말했다.

이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은 4월부터 '비양육부·모와 자녀 관계 지원 프로그램'(가칭)을 운영할 계획이다. 시범 사업으로 우선 40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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