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북관계' 저자 인터뷰

"페리 프로세스(미국 클린턴 정부 대북포용정책) 이끌어낸 건 한국"

2016-06-15 14:55:30 게재

미·중에 주도권 넘긴 '패배론적 자세' … '자주적 해결' 강조한 6·15선언 의미 퇴색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할수록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아프리카, 남미까지 찾아가 대북 압박 외교를 전개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이 제재의 '구멍'이 될까 걱정하고 혹시나 미국이 우리를 따돌리고 대북대화에 나서는 건 아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6년 전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외쳤던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찾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임기홍│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1998년부터 현재까지의 남북관계 통사를 정리한 위기의 남북관계 를 출간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이 압박공조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방어적·수세적' 외교를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남북문제에 있어서 미국을 이끌며 '능동적·주도적' 외교를 했던 때가 있었다. 최근 '위기의 남북관계'를 펴낸 임기홍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단언했다.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1998년부터 현재까지의 남북관계 통사를 정리하면서 그는 남북관계에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평화의 시대가 분명히 있었고, 그 평화의 시대를 이끈 우리의 역할에 주목했다.

임 연구원은 "김대중 정부 때 정상회담도 있지만 그 전에 페리프로세스가 나오는 데까지 노력했던 부분이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미국이 대북강경정책을 고려하고 있고 모의 핵전쟁 연습을 하는 시기였는데 한국 대통령과 외교안보책임자가 미국측 책임자를 만나 설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설득한 결과, 미국의 정책기조가 변화했고 북미관계도 개선됐다"면서 "이것이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졌고 남북정상회담이 나올 수 있었던 주요한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조정관이었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은 처음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을 듣고는 자기 생각과 너무 달라서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임동원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권유로 북한을 방문하고 북측과 협상을 하면서 페리 전 장관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봐야 된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후 그는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시작해야 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도 필요하다는 내용의 페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임 연구원은 "페리 보고서를 냈을 때 페리 조정관이 사실은 임동원 수석의 생각을 많이 접수했다고 밝혔다"면서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북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또 다른 예로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이 한국과 핵 관련 논의를 했다는 것을 들었다. 물론 본질적인 핵문제 해결 논의는 아니었지만 핵 문제는 오로지 북미간의 대화 의제라고 주장했던 북한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남북간에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이 핵폐기에 동의하면 남한이 독자적으로 200만kW 전력을 직접 송전방식으로 제공한다는 중대제안을 했다. 임 연구원은 "이 제안은 핵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책으로는 미흡했지만 팽팽한 북미간 대결구도에서 남한이 나름의 대안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면서 "이 때 북한은 6자회담 복귀 의사를 중국이 아닌 우리에게 먼저 밝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다들 평화롭게 살고 싶고 장기적으로 불안요소가 해결되기를 바라는데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었던가. 그렇지 않았다"라면서 "과거를 들여다보면 지금 대북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면서 '상호 존중'과 '상호 양보'를 꼽았다.

그는 "남북은 서로 전쟁을 했고 분단된 상태이고 경계선에는 화력이 집중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존중과 양보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북한을 통일의 파트너로 본다면, 최소한 외교상대로 본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상호 존중을 해야 상대방에 대한 영향력이 생긴다"면서 "대북정책은 궁극적으로 통일을 위한 것이고 통일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만 한반도 문제에서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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