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구조개혁법 재추진하는 정부│③ 독소조항 위험성 경고하는 서남대 사례

다른 대학 폐교해 설립자 횡령금 보전

2016-07-01 11:34:33 게재

구 재단, 교육부에 정상화 방안 제안 … 법 통과시 폐교 과정서 '자기 몫 챙기기' 가능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대학구조개혁법'의 일부 독소 조항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관선이사 체제인 서남대 구 재단이 교육부에 제출한 정상화 방안이 대학구조개혁법 독소 조항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교육부가 옛 재단의 자구계획에 따라 의대의 폐과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전북 남원의 서남대 의대 건물. 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대학교육연구소는 최근 교육부가 구 재단의 정상화 방안을 공개하자 '대학구조개혁법 미래 보여준 서남대 정상화 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따르면 구 재단은 한려대를 자진폐교해 횡령금 330억원을 보전하기로 했다. 서남대는 의과대학을 폐과하고 녹십자병원, 남광병원, 남원병원, 구 광주예술대 건물과 수익용 재산 등 460여억원 규모의 자산을 매각해 교육여건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서남대 남원캠퍼스 일부를 평생교육원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한려대와 통합해 아산캠퍼스로 이전하겠다는 내용도 함께 제안했다.

두 대학 법적 연관성 없어 = 구 재단이 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서남대를 살리기 위해 한려대를 폐교·매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대학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대학이다. 서남대의 법인은 서남학원이며 한려대는 서호학원 소속이다. 두 대학 모두 교육부가 선임한 임시이사 체제이지만 각각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구 재단이 두 대학의 이사회를 제치고 한려대를 폐교하는 '정상화 방안'을 냈다.

근거는 두 대학의 설립자가 이흥하씨 한 사림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광주광역시에서 목욕탕을 운영해 번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5000만원을 마련해 1977년 '홍복학원'을 설립했다. 1979년 옥천여상을 시작으로 3개의 고등학교와 서남대(1991년), 광양보건대(1994년), 한려대(1995년), 광주예대(1997년), 신경대(2000년), 서울제일대학원대학교(2011년)를 잇달아 설립했다.

설립자금은 먼저 설립한 학교의 교비를 빼돌려 조성했다. 교과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씨는 서남대(330억원), 한려대(148억원), 광양보건대(403억원), 신경대(15억원) 등에서 총 897억원을 횡령했다. 학교와 법인의 요직에는 동생, 부인, 조카, 측근 등을 임명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이씨에게 징역 9년을 확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 재단이 폐과, 폐교, 자산매각을 골자로 하는 정상화 방안을 제출했다는 것은 이씨가 여전히 대학 운영에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교육당국이 대학의 공익성보다는 설립자의 재산권을 우선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육부는 "서남대와 같이 한 설립자(법인)가 여러 대학을 운영하는 경우 통·폐합 또는 자진폐교를 통해 발전가능성이 있는 대학에 집중 투자하거나 여건이 어려운 대학간 통·폐합이 활성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설립자 재산 보존해 주는 '정상화 방안' = 교육계에서는 서남대 사례가 법인이나 대학이 해산할 때 설립자 등에게 잔여재산 일부를 돌려줄 수 있도록 한 대학구조개혁법의 독소 조항의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한려대는 자진폐교해 이씨의 횡령금 330억원을 보전한다. 설립자가 동일하다는 이유만으로 별개 법인 소속인 한려대 재산을 매각해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대학연구소 관계자는 "이씨가 대법원에서 9년 실형을 받은 데는 한려대에서 148억원을 횡령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면서 "정상화 방안이 확정되면 이씨에게 교비를 강탈당한 한려대는 스스로 폐교하고 재산을 팔아 그의 서남대 황령금을 보전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더욱이 서남대 옛 재단이 낸 '정상화 방안'은 교육부가 수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만약 '정상화 방안'대로 추진될 경우 이홍하는 '본인 재산'을 그대로 보존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만기 복역하거나 가석방으로 출소한 후 5년이 지나면 학교 복귀가 가능하다. 그 전이라도 가족과 측근들을 통해 이사회를 장악해 배후에서 사실상 학교를 경영할 수 있다. 보고서는 이씨가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박철웅 전 조선대 총장은 조선대 하나만 갖고 운영하다 망했지만 나는 여러 개로 분산해서 경영하기 때문에 망할 까닭이 없다"고 말한 부분을 눈여겨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간판 바꾸면 잔여재산 보존 가능 = 여기에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대학구조개혁법안이 입법에 성공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법안은 법인이나 대학이 해산할 때 설립자 등에게 잔여재산 일부를 돌려줄 수 있도록 했다.

한려대 폐교 과정에서 이씨측은 자신의 몫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대학구조개혁법 제정을 찬성하는 측은 이를 자발적 퇴출을 유도하기 위한 블가피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반대측은 부실경영을 책임져야 할 재단과 설립자에게 대학을 팔고나갈 수 있는 특혜를 주는 독소 조항이라고 비판한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의 잔여재산을 국고에 귀속하도록 하고 있다.

법안은 또 대학의 장이나 학교법인이 '대학구조개혁 자체계획'을 통해 학생정원 감축, 대학 폐지, 다른 대학과의 통합, 다른 학교법인과의 합병, 학교법인 해산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자체계획에 따라 학교법인이 해산할 때는 공익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 직업능력개발훈련법인, 평생교육시설을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할 수 있다.

대학을 부실하게 운영해 문 닫을 지경에 이른 학교법인이라도 공익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으로 간판만 바꿔달면 잔여재산을 보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들로 정부발 대학구조개혁법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결국 사립대학 설립·운영자들의 재산을 보존해 주는 '먹튀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학구조개혁법 재추진하는 정부'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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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독소조항 위험성 경고하는 서남대 사례│ 다른 대학 폐교해 설립자 횡령금 보전 2016-07-01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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