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해비타트Ⅱ' 이후 20년, 주거권 현주소

"꿈 향해 도전하고 싶어요. 그런데 '집' 생각만 하면…"

2016-10-18 11:05:24 게재

수도권 청년 70% 수입 1/3 이상 임대료 지불 … 초기 '자산형성지원' 프로그램 필요

서울 돈암동에 사는 대학생 김아무개(22)씨. 밤 늦게 알바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서러움이 밀려온다. 형편에 맞춰 무보증금에 월세 40만원의 싼 집을 구하다보니 주거여건이 너무 열악한 것이다.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보증금 부탁하기가 죄송스러웠다. 그나마 이 집도 며칠간 발품을 팔아 겨우 구했다. 싸다지만 월세가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김씨는 현재 농산물 식자재 마트에서 카운터 알바를 하고 있다. 오후 4~10시까지 주중에만 일한다. 시급 6300원. 한달 수입이 75만6000원 정도다. 어려서부터 곤충을 좋아했던 김씨 꿈은 곤충학자다. 그러나 요즘들어 고민이 많다. "꿈을 향해 도전하고 싶지만 집만 생각하면 하루빨리 안정적인 직장에 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년주거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치솟는 주거비 부담에 수많은 청년들이 고시원, 옥탑방, 반지하방, 달동네 등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청년들에게 주거문제는 단순한 주거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삶과 미래에 관련된 문제다. 사단법인 서울청년의회 박향진씨는 말한다. "청년들의 주거문제는 바로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집에서 산다는데 있다"고. 박씨는 공공임대주택에 살게 된 이후 생활이 달라졌다. 이웃이 생겼고, 저렴한 월세 덕분에 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다. 박씨는 "이제는 꿈을 좇아 살아볼 여유가 생겼다"며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다른 청년들도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5년 10월 첫 입주한 삼전지구 행복주택 입주식 장면. 청년층을 주대상으로 한 주택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공급량이 적은데다, 임대료가 높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사진 국토교통부 제공


청년주거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시작됐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로 인한 비정규직 확산 등으로 청년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크게 흔들렸다. 청년의 지불능력은 급격히 약화된 반면, 주택가격은 빠르게 치솟았다. 급기야 월세→전세→자가라는 '주거사다리'가 붕괴됐다. 결국 '5포'(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7포'(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인간관계 꿈)에서 보듯 청년의 삶은 점차 황폐화되고 있다.

월세→전세→자가 '주거사다리' 붕괴 = 실제 청년들이 겪는 주거현실은 가혹하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나이가 적을수록 주거비 지출이 많고, 주거면적도 좁아진다. 청년층은 지난 10년간(2005~2014년) 월세, 관리비 등이 포함된 실제 주거비로 월평균 6만2000원을 지출했다. 그러나 40~50대는 4만3000~4만9000원을 썼을 뿐이다. 2003, 2008년 청년의 4년 후(2007, 2012년) 주거소비를 분석한 결과, 주거면적이 25~29세에서 4.7㎡, 30~34세에서 3.2㎡ 각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통계도 청년층의 열악한 주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원욱(더불어민주·경기화성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월세가구 중 청년층(19∼29세)의 평균 보증금은 1395만원으로, 비청년층(2778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매달 내는 월세(3.3㎡당)는 청년층이 6만6000원인데 반해, 비청년층은 5만6000원이다. 청년층이 17.9%(1만원) 더 부담한다. 전세금으로 낼만한 목돈이 없는 청년들이 보증금이 적은 대신 비싼 월세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대문구는 청년층 월세가 8만9000원으로, 비청년층(3만3000원)보다 무려 2.7배 높았다.

게다가 청년층이 주로 찾는 소형주택(아파트 제외) 임대료가 중대형보다 더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 '민달팽이유니온' 분석에 따르면, 단독·다가구주택(㎡당, 준월세)의 경우 소형주택(60㎡ 이하) 임대료는 1만5400원이데 비해, 중대형(60㎡ 초과)은 8400원이었다. 다세대·연립주택도 소형 1만8400원, 중대형 8500원으로 집계됐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공주택은 어떤가? 역시 청년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저렴한 LH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중 20대는 2.9%, 30대는 17.4%에 불과하다. 그간 공공임대주택의 주요 대상이 청년 1~2인 가구보다는 40대의 3~4인 가구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청년들의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져 비정규직과 알바로 내몰리고 있다. 20대의 최저주거기준미달 가구 비율이 70~80대보다 높은 실정이다.(그래표 참조)

이러다보니 청년들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임대료로 지불하고 있었다. 국토부 주거실태조사(2012년)를 보면, 수도권 거주 청년층(19~33세)에서 RIR(소득 대비 임대료 비중)이 30%를 넘는 가구가 69.9%에 달했다. OECD는 20%를 RIR 적정선으로 간주하고 있다.

권지웅 민달팽이유니온 이사장은 "부모 도움을 받기 어려운 대부분의 청년들이 사회진입 초기부터 높은 주거비 부담에 고통받는다면 향후 자산형성 기회 자체를 갖기 힘들어진다"며 "사회생활 초기에 지원을 통해 자산형성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높은 주거비 부담, 향후 자산형성 방해 = 최근들어 정부 주택정책도 청년층을 주목하고 있다. 조정식(더민주·경기시흥을) 의원이 작성한 '박근혜 정부의 청년 주거 정책 현황과 한계' 보고서를 보면 3년 6개월간 청년 대상으로 2만3405가구를 공급했다. 특히 현정부가 도입한 '행복주택'은 주대상이 청년층이다. 보고서는 행복주택이 청년 상태에 따라 정책을 구분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청년주거 지원정책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세임대주택'은 사실상 보증금을 대출해주는 금융정책으로 볼 수 있다. 실제 20·30대가 전체 금융정책 건수의 66.3%(9조7559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청년 부채를 양산하는 동시에, 위기를 유예시키는 일시적 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행복주택 공급도 원활치 않0다. 목표 공급량 15만 가구에 턱없이 부족한 3662가구(2.4%) 공급에 그치고 있다. 행복주택 임대료 역시 부담스럽다.

행복주택이 다른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공급원가가 아닌 주변 시세를 기준으로 임대료를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공급된 '서초내곡' 행복주택은 월세전환율 6% 적용시 환산 임대료(㎡당)가 2만1000원으로, 인근 '서울서초3' 국민임대주택(9000원)보다 2배 이상 비싸다.


행복주택 임대료 타 공공임대보다 비싸 = 현재 청년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이 모색되고 있다.

유엔 해비타트Ⅲ 민간위원회는 △민간시장에 대한 공공개입 △민간의 대안사례 확산과 지원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표준임대료·임대차등록제·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하고, 곧 조직될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부여하라고 주문했다.

또 민달팽이유니온, 우리동네사람들 같이 임대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다양한 민간단체 활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청년세대가 중심이 돼 입주자 공동체 형성과, 주거안정을 도모하는 대안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청년층 자산형성과 자가점유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라고 제안했다.

이수욱 선임연구위원은 "원활한 주택시장 진입을 위해 청년 초기부터 자가나 임대주택에 필요한 자산형성지원 금융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장기 주택원리금 상환상품(20세 가입, 50년 분할납부) △수수료 부담없는 중도금 일시상환 상품 △소득이 많은 40~50대에 원금상환액이 커져 이자부담을 줄이는 금융상품 등이 그것이다.

조정식 의원은 공공임대주택 일부를 청년가구에 우선 공급하자는 방안을 내놨다. 이와 관련, 조 의원은 이미 지난 7월 소득·자산 기준을 충족하는 청년 1인 가구를 공공주택 우선공급 대상자로 하는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조 의원은 "청년은 우리의 미래"라며 "청년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미래를 불안케 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청년주거 문제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해비타트Ⅱ' 이후 20년, 주거권 현주소' 연재기사]
- ① 쪽방·옥탑방에 강제철거까지 … 갈길 먼 '주거권리' 실현 2016-10-17
- ②"꿈 향해 도전하고 싶어요. 그런데 '집' 생각만 하면…" 2016-10-18
- ③주거급여, 빈곤 해결엔 역부족 … 부양의무제 폐지해야 2016-10-19

김병국 기자 bgkim@naeil.com
김병국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