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눈물 '장애인 학대' ①

피해상담 3년새 3배 폭증 … 정부 공식통계조차 없어

2017-06-28 10:04:51 게재

뒤늦게 장애인 권익기관 문 열어 … "관련 기관 눈치 안보는 독립성 확보 필요"

#1. 지적장애인 A씨는 충남 당진에 있는 한 공장에서 10여년간 근무했다. 휴일도 없이 하루 12시간 넘게 일을 해왔지만 월급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에야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고, 업체 사장 B씨가 60대인 A씨에게 지급되는 국민연금 유족연금 장애인연금 등을 횡령하고 월급을 주지 않았던 게 밝혀졌다. 게다가 B씨는 강제 노동 강요와 경제적 착취 등은 물론 폭력행위를 일삼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2. 지적장애인 C씨는 질병을 앓고 있었다. C씨 가족은 집에서 간호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D요양원에 C씨를 보냈다.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던 C씨는 입소 5일 만에 영양실조와 탈수증세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입원 3일 만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상하게 느낀 가족들이 확인해 본 결과, D요양원에서 C씨가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해서 3일간 침대에 묶어놨던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 사례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 접수된 학대 사건들이다.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각종 학대에 시달리는 장애인들이 여전하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다.

실제로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에 접수된 학대 관련 상담건수는 3년새 약 3배 증가했다. 2013년 947건에서 2015년 2382건으로 늘고, 전체 상담 건수 중 학대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실제 장애인인권 침해 현황이 어느 정도인지 정부 공식 조사 자료는 전무한 상황이다. 장애인정책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을 열고, 실태조사 계획 등을 발표했지만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학대 사건 피해자 51.8% '지적장애인' =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장애인상담 건수 2만2411건 중 학대 문제 관련 상담건수는 6872건으로 30.7%를 차지했다. 더 큰 문제는 전체 상담 중 장애인 학대 관련 상담 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21.0%에서 2014년 24.7%, 2015년 33.2%, 2016년 상반기 42.8%로 상승 추이를 보이고 있다. 학대 유형별로 살펴보면 신체적 학대 비율이 41.6%로 제일 높았다. 이어 정서적 학대 20.8%, 경제적 학대 18.5%, 성적 학대 11.5%, 유기·방임 7.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대 사건의 절반 정도가 피해 당사자가 지적장애인이었다. 학대 관련 장애인 상담건수 6518건 중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인 경우가 3376건으로 51.8%에 달했다. 이어 지체장애 13.8%, 뇌병변장애 8.5%, 정신장애 6.7%, 자폐성 장애 4.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동석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장은 "단순히 상담건수가 늘었다고 해서 학대 사건이 증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대중의 장애인 학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2015년말부터 장애인복지법상 학대신고의무제도가 시행되면서 신고가 증가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최근 들어 지적장애인의 경제적 학대 사례가 밝혀지는 것처럼 정신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학대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예단하기는 힘들다"며 "종합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인철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은 "장애인 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실태 조사 등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지, 그동안 소홀한 측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법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조사를 의무화한 사항은 아니지만 올해 개소한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실태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해 일어난 기관에 조사자료 제출 우려" = 현장에서는 늦게나마 장애인권익 전담 기관이 생긴 것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장애인 인권 침해에 대한 현장 조사 및 법적 대응 등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관의 독립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에서도 업무를 수탁 받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장애인 학대는 업무 수탁 기관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조사의 독립성 확보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학대가 이뤄진 기관이나 가해자에게 피해 조사 자료 등을 제공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장애인복지법상 미비로 현장 조사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장애인학대 신고를 받아 현장에 조사를 나가도 해당 시설에서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장애인 학대 신고에 대한 조사 권한은 부여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권한의 범위와 조사 방법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나타나는 문제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경찰과 공무원 등에 동행을 요청하거나 경찰에 신고된 장애인학대 사건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또한 피해 장애인의 신분 확인 등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관계기관에 필요한 부분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 즉 타 기관의 업무협조에 관한 규정도 없는 상황이다.

반면 노인복지법의 경우 노인학대신고를 접수한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직원이나 사법경찰관은 지체 없이 노인 학대 현장에 출동하고, 이 경우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장이나 수사기관의 장은 서로 동행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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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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