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실종' 미스터리

2017-09-15 11:09:52 게재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2016년 여름부터 전 세계 경제가 완만한 확장국면에 들어섰다. 점차 성장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르지 않은 게 있다. 바로 선진경제국 내 인플레이션이다. 왜일까. '닥터 둠'이라 불리는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14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서 그 원인을 따졌다.

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일본을 비롯한 선진경제국가들의 최근 경제성장은 총수요 증가 덕분이다. 지속적으로 확장적인 통화·재정정책을 쓴 결과다. 물론 기업과 가계의 경제심리가 호전된 측면도 있다. 심리호전은 금융과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요 강세는 상품시장과 노동시장에서 '공급 우위의 느슨함'(slack)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근 선진국의 경제성장은 인플레이션 상승을 동반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올해 미국의 근원인플레이션은 하락했다. 유럽과 일본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나 유럽중앙은행(ECB) 등에겐 커다란 딜레마다. 양적완화와 마이너스금리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서서히 줄여가려던 참이기 때문이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건 사실이지만, 연 2%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제가 확장되는데 인플레이션이 낮은 건 경제학적으로 미스터리한 결합이다. 그에 대한 설명 중 하나는 총수요 강세와 더불어 선진국이 '긍정적 공급충격'(positive supply shock)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 공급충격이란 특정 상품의 공급이 갑작스럽게 증가해 가격을 감소시키는 것을 말한다.

공급충격 지속성 따라 대응 달라져

공급충격은 여러 형태로 설명될 수 있다. 글로벌화 덕분에 중국과 기타 신흥국에서 생산된 저렴한 상품과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세계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또 노동조합의 약화된 위세, 노동자들의 줄어든 협상력 등으로 실업률-인플레이션의 역상관관계(필립스곡선)가 무력화되고 있다. 구조적 실업이 낮아졌지만 임금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석유 등 원자재가격이 낮은 상태거나 하락하고 있다. 새로운 인터넷 혁명에서 시작된 기술혁신도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고 있다.

일반 경제이론에 따르면 그같은 긍정적 공급충격에 대한 통화정책 대응은 '지속성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공급충격이 일시적이라면 중앙은행들은 그에 대응해선 안된다. 정상적 통화정책을 써야 한다. 공급충격은 곧 자연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품시장과 노동시장이 수요 우위로 타이트해지면 인플레이션은 오르게 된다. 그러나 만약 공급충격이 지속성을 띤다면, 중앙은행들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중앙은행들에게 뉴스거리도 아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내리누르는 공급측면 충격은 일시적 상황"이라고 주장해왔다. 근원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금리정상화를 시작하는 데 대한 정당방위 차원이다. ECB도 '인플레이션은 결국 오르게 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2018년부터 자산매입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계획중이다.

'인플레이션 상승을 막고 있는 긍정적 공급충격이 일시적'이라는 중앙은행들의 가정이 틀린 것이라면, 통화정책 정상화는 잘못된 처방이 된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당분간 더 오래 지속돼야만 한다.

하지만 그 반대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만약 공급충격이 영원하거나 생각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면, 통화정책 정상화는 오히려 더 빨리 시행돼야 한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기존 경제학에서 포착할 수 없는 '뉴노멀'(새로운 기준) 시대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 원인 놓고 갈팡질팡

대표적으로 국제결제은행(BIS)이 이런 관점을 취하고 있다. BIS는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가 아니라 0%로 하향조정해야 한다고 강력 주장한다. BIS는 긍정적 공급충격의 환경에서 2% 인플레이션을 달성하려 노력하는 일은 통화정책의 과도한 완화로 귀결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위험자산의 가격을 올리고 종국적으로 거품을 위험수준까지 부풀리는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은 예정보다 더 빨리 금리정상화, 자산축소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BIS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은 '만약 자산가격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면, 이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거시건전성 신용관리 대책 등으로 막아야 하는 문제'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물론 선진국 중앙은행은 자산 인플레이션이 전혀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할 것이다. '일시적' 공급충격으로 인플레이션이 억제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시장과 노동시장이 타이트해지는 대로 인플레이션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오늘날 낮은 인플레이션이 영구적인 공급충격으로 촉발됐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은 더욱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쓰는 것만은 꺼리고 있다. 그래서 2% 인플레이션 목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달성 시기만을 뒤로 미루려 하고 있다. 낮은 인플레이션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일단 목표시기를 미루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나 마이너스금리 등을 포함한 비전통적 완화정책을 더 오래 지속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을 제외하고는 내켜하지 않는 정책이다.

문제는 중앙은행들의 '인내'가 인플레이션 기대감을 더욱 낮추는 위험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자산가격 인플레이션, 과도한 신용 확장, 거품 형성 등 위험을 야기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기도 마뜩잖다.

루비니 교수는 "낮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두고 갈팡질팡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이도저도 못하는 위험요소 사이에서 계속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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