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다산에게 길을 묻다│광주 북구 '마을만들기' 제2회 다산목민대상 수상

쓰레기더미가 텃밭으로, 주민이 영화 주인공으로…

2018-02-05 09:54:13 게재

마을만들기 18년, 풀뿌리 민주주의 자리매김

363개 마을사업 추진 … 전국 마을사업 선도

"제가 영화 주인공이에요. 다른 배우들도 모두 주민들이죠. 마을 이야기를 주민들이 직접 영화로 만든 것이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네요."

지난해 10월 23일 광주시 북구 중흥2동 평화시장에서 열린 '간뎃골 영화제'에서 주민들이 손수 만든 영화 ‘춘섭아’ 감독과 출연진들이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제작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15명은 모두 이 동네 주민들이다. 사진 광주 북구 제공


김영옥(55)씨는 광주 북구 중흥2동 주민들이 직접 만든 영화 '춘섭아'의 주인공 춘섭 역을 맡으면서 마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중흥2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지난해 독립영화를 제작키로 하고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영화 '춘섭아'는 출연 배우 15명이 모두 중흥2동 주민인 45분짜리 휴먼코미디다. 중흥2동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자활근로자 김춘섭씨를 모델로 쓰레기 불법투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주민들이 만들었다고 그냥 대충대충 만든 동영상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해 10월 21일 중흥2동 전통시장인 평화시장에서 영화를 정식 개봉했고, 그해 11월에는 광주독립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중흥2동 주민들은 2016년에는 인근 중흥 1·3동 주민들과 함께 2016년 '중흥동 사람들의 일과 삶'이라는 책도 펴냈다. 역시 주민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낸 마을의 자원과 역사를 담은 스토리북이다. 이 책에는 건축자재의 거리, 광주역, 방앗간, 평화시장 등 공간에 얽힌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평생 마을을 지켜온 마을사람 10명의 인생사도 들어있고, 골목골목에 얽힌 이야기도 소개됐다. 모두 광주 북구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일이다.

광주북구 전체가 마을만들기 전시장 = 텃밭이 마을만들기의 단초가 된 곳도 있다. 삼각동이다. 이곳은 20년간 방치돼 쓰레기더미가 돼 있던 마을 중심부 2000㎡의 하천부지를 주민들이 2년(2012~2013년)에 걸쳐 직접 텃밭으로 조성하면서 변화가 생겨났다. 주민자치위원회에 텃밭관리분과가 생겼고, 관리규약이 만들어졌다. 텃밭경작 대표자도 선출했다. 의사결정 과정을 어떻게 해야 마을의 역량이 모아지는지 몸소 배우는 기회였다. 텃밭 사업이 자리를 잡으니 물고 터진 듯 다른 사업들이 이어졌다. 텃밭에 바람개비라는 이름을 붙이고, 상징물도 세웠다. 텃밭에서 채소무인판매대를 운영하고, 어린이 사생대회와 장터도 열었다. 최근에는 주민커뮤니티 공간 '바람개비 마실'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공간에서 갖가지 주제의 주민회의를 열고 요가·구연동화 같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삼각초등학교 학부모독서회, 삼각동 전래놀이 강사단, 톡톡톡 인형극단 등 마을 단체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기도 한다. 마을의 미래 계획을 담은 '바람개비 삼각동 꿈'이라는 책도 주민 손으로 발간했다. 박미자 마을활동가는 "10년 후의 마을을 설계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수준까지 주민 역량이 커졌다"고 즐거워했다.

문화동은 2000년 동네 담장에 시를 적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마을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백일장을 열고, 마을 문집을 3권이나 내고, 시화 예술제를 개최하는 등 사업 범위를 계속 넓혀갔다.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지자 북구를 넘어 광주시나 중앙부처 공모에 참여해 마을을 가꿀 다양한 사업을 유치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지금은 미술관과 문화관, 커뮤니티센터를 갖춘 자타가 인정하는 '시화문화마을'이 됐다. 양옥균 문화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이제는 마을에서 직접 중앙부처를 찾아가 하고 싶은 사업을 설명하고 예산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며 "주민들 스스로 최고의 마을을 만들어간다는 긍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전국 최초 '마을만들기 조례' = 광주 북구의 마을만들기 역사는 오래됐다. 2000년 지저분한 골목길 정비 등 조그마한 동네 환경개선사업을 진행한 것이 마을만들기 사업의 시작이다.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된 후 주민참여와 소통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이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찾아낸 첫 사업이다. 골목길 벽화 그리기, 담장 허물기 등이 대표 사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업내용이 다양해졌다. 소통공간을 조성해 사람들을 모으고, 그 안에서 마을방송국과 주부인형극단을 운영한다. 공동육아를 하는 주민들도 생겨났다. 지난해까지 18년 동안 광주 북구 마을만들기 사업에 투입된 예산만 77억원이 넘는다. 이 돈으로 363개의 크고 작은 사업이 추진됐다. 마을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낸 곳만 10개 동이다. 올해도 3~4개 동이 스토리북을 만들 계획이다.

광주 북구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오래된 만큼 체계적이다. 2004년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마을만들기 조례를 제정했다. 또 각종 마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와 교수·전문가·시민단체로 구성된 '아름다운 마을만들기 위원회'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높이고 사업의 전문성과 지속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일이다. 도심 속 농촌마을 자연환경을 활용해 무돌길 쉼터, 반디민박 등으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충효동 평촌마을', 전형적인 아파트 도시마을을 생태체험과 주민들의 정이 넘치는 공동체로 변모시킨 '일곡동 한새봉 생태마을', 구도심 공동화 문제를 야구장을 활용해 극복해가고 있는 '임동 야구마을', 주택가 골목길에 특색 있는 조형물과 벽화를 설치해 걷고싶은 거리를 만든 '신안동 디카의 거리' 등 거의 모든 마을이 자신들만의 특색 있는 사업들을 하고 있다. 임선이 북구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장은 "소규모 주민협의체,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등 다양한 풀뿌리 주민자치 조직이 마을활동가로 참여해 동네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자치문화를 꽃피우고 있다"고 말했다.

송광운 구청장은 "마을만들기로 시작된 풀뿌리 민주주의는 이제 북구를 공동체 자치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지자체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인터뷰│송광운 광주 북구청장] "주민들의 참여·소통이 지방자치 핵심"
[새 대표정책│'개미 장학금'] 주민 12% 참여해 장학기금 69억원 조성

['신년기획│다산에게 길을 묻다' 연재 보기]

김신일 방국진 기자 ddhn21@naeil.com
김신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