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재정, 무너지는 사립대학③

"무한경쟁식 대학평가, 재정고갈 가속화"

2018-05-03 11:02:41 게재

교육여건보다 평가지표 맞춰 투자 … "5년간 2조8000억원씩 추가 재원 필요"

사립대학 중심으로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대학역량진단평가(구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대학재정 고갈을 가속화시킨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대평가로 진행하는 이들 평가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한 대학들의 인적·물적 투자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2일 대학들에 따르면 각종 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고등교육정책으로 인해 지표에 맞춘 대학들의 시설투자, 고용, 대응투자 등이 증가하면서 교육에 사용할 예산까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평가 때문에 대학 재무구조가 고비용 구조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일부 대학들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유치전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임해규 전 의원이 로스쿨 24곳으로부터 2004년 1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사용한 유치 비용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학교 당 평균 115억9400여만원에 달했다. 가장 많이 투자한 A대학의 경우 총 549억1900여만원에 유치를 위해 쏟아 부었다. 로스쿨 출범 이후에도 대학들의 투자는 계속됐다. 치열한 유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대학들이 앞 다퉈 추가 투자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장학금을 둘러싸고 학교당국과 학생들 간 분쟁이 발생했던 B대학의 경우 2009~2011년 3년 사이 로스쿨 운영수지가 1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로스쿨을 운영하는 한 대학 관계자는 "평가 방식이 지나치게 고비용 구조라는 생각들은 했지만 유치하지 않으면 위상이 떨어진다는 분위기로 인해 앞 다퉈 무리한 투자를 했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것저것 고려하다보니 학교 당 정원이 적어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은 학교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리한 투자에 나선 대학도 문제지만 사실상 이를 유도하고 경쟁을 부추긴 정부도 책임이 크다"면서 "이런 방식의 선정은 앞으로는 없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들은 또 대학역량진단평가도 재정을 고갈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등록금 수입이 수년째 동결된 상황에서 구조개혁평가 지표를 높이기 위한 대학들의 인적·물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모집이 점점 어려워져가는 상황에서 부실대학 낙인은 학교 존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학생모집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지방 사립대학은 교육과 학생복지 등 장기비전보다는 지표 상승을 위한 맞춤식으로 예산을 배정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가 교육통계에 따르면 현재 고등학교 2학년과 1학년 학생 수는 각각 52만2374명, 45만9935명이다. 반면 대입정원은 55만5041명(2019학년 기준)이다. 2021학년 대입에서는 고졸자보다 대입정원이 9만5106명 많다. 연평균 재수생이 10만여명 가량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고졸자 대학진학률이 70%를 밑돌고 있어 실제 입학생은 10만명 이상 모자랄 전망이다.

지방의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대학, 특히 지방대학에게 구조개혁평가는 사실상 생존경쟁"이라면서 "생존하기 위해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데 미래에 대한 투자가 눈에 들어올 리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하위 40%에 포함되면 재정지원과 정원감축은 물론 학생모집도 어려워지고 하위 20%는 퇴출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2016년까지 진행한 1주기 평가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학교들이 당한 고통을 아는 대학들로서는 미래보다는 현실의 평가를 위한 투자 우선"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립대 관계자는 "우리 대학은 각종 평가들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둬왔다"면서 "수년간 정부가 요구하는 평가지표에 맞춘 눈높이 투자를 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재정 압박이 주는 후과가 크다"면서 "현재와 같은 무한 경쟁식 평가를 계속한다면 대학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분위에 따라 지급하는 국가장학금Ⅰ유형과 달리 대학 자체기준에 따라 등록금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 국가장학금 Ⅱ유형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Ⅱ유형은 등록금 동결·인하, 입학금 폐지, 장학금 확충 등 대학의 노력에 맞춰 매칭 지원하고 있어 대학 재원과 정부 예산이 섞여 있다. 대학가에서는 등록금 수입을 다시 장학금으로 돌려주는 구조라 장학금 기능보다 수입이 정체된 대학 재정을 더 악화시키는 역할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국가장학금 Ⅱ유형을 폐지하고 예산은 Ⅰ유형에 통합해 장학금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 억제 정책, 각종 평가로 한 실질수입 감소와 교육여건 관련 재정투자 감소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를 제시한다. 현재 국내 대학진학률은 70% 대에서 하락하기는 했지만 평생교육, 재교육 등이 강조되면서 사실상 보통교육 특성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사립대학(전문대학 포함)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독특한 구조다. 지난 1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회에서 4년제 대학 총장들은 건의문을 내고 교육력 회복을 위해 향후 5년간 매년 2조8000억원씩 추가 투자해 2023년까지 고등교육예산을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만드는 '고등교육재정의 단계적 확충모델' 정책을 제안했다.

['위기의 재정, 무너지는 사립대학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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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무한경쟁식 대학평가, 재정고갈 가속화" 2018-05-03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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