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재정, 무너지는 사립대학 ①

재정난에 학생 교육·복지 위축

2018-04-23 12:49:59 게재

2016년 4년제 대학 총수입 2011년 대비 5657억원 감소

일부에서는 "고등학교 교육환경이 더 나을 것" 자조

#1. 수도권 사립대에 근무하는 A교수는 지난해 논문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준비하던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수십 편의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봐야 하는데 상당수가 학교 도서관에서 서비스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교수는 다른 방법을 동원해 해결은 했지만 재정상 값비싼 논문을 모두 서비스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란 학교 도서관 설명 때문에 걱정이다.

#2. 지방 사립대 교수인 B씨는 몇 년 전부터 친구가 교수로 근무하는 서울의 한 대학을 자주 찾는다. 눈치가 보이기는 하지만 실험실 장비를 빌려 쓰기 위해서다. 근무하는 학교가 확보한 실험용 장비는 구형인데다 고장으로 가동 못하고 서있는 날이 더 많아 사실상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산학협력을 강조하지만 실험기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연구와 교육을 해야 하는 B교수는 막막하기만 하다.

반값등록금 정책이 정기화되면서 사립대학들의 재정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학생들의 교육과 복지혜택까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교육계에서는 등록금 부담은 줄이면서 고등교육 재정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정책의 현재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장기간 정부의 등록금 동결·인하 압박이 지속되면서 사립대학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교육·복지 예산이 줄어들면서 학내 구성원들의 불만과 항의가 거세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대학 등록금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사립 4년제 일반대학 기준 연평균 등록금은 2011년 730만6999여원을 정점으로 해마다 감소 또는 동결돼 2017년 705만여원을 기록했다. 또 인상률은 2011년 1.6%, 2012년 -3.8%, -0.3%(2013년), 0.0%(2014년), 0.1%(2015년), 0.2%(2016년), 0.3%(2017년)로 동결되거나 인하됐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2017년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2008년 대비 16.0%, 2011년 대비 11.2% 감소했다.


"학생 책도 못 사줄 상황" = 이에 따라 전국 154개 사립대 등록금 수입은 2011년 11조554억원에서 2016년 10조7232억원으로 3322억원 줄었다. 등록금에 기부금·국고보조금 등을 모두 합친 총수입은 같은 기간 5657억원(17조2341억원→16조6684억원) 감소했다.

재정의 어려움은 사립대학 교비회계 세출결산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립대 교비회계 세출결산 총액은 2014년 24조894억원을 정점으로 2015년 23조8841억원, 2016년 23조7356억원으로 해마다 줄었다.

문제는 사립대학의 재정난이 교육여건과 학생복지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립대학의 경우 기계기구매입액, 연구비, 실험실습비, 도서구입비 등 직접교육비의 지출이 2011회계연도 1조7680억원에서 2015년 1조5848억원, 2016년 1조6420억원으로 감소했다.


서울 소재 한 소규모 사립대학 도서관장은 "도서관뿐 아니라 학내 모든 부서가 예산을 줄이는 상황에서 우리만 더 달라고 말하기 곤란한 상황"이라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학생들이 사달라는 책도 바로 사주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일부 대학에서는 졸업이수학점 축소, 개설강의 축소 및 복수전공 부전공 규제, 재수강 제한, 비정년교수 임용 확대, 적립금 감소 등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사립대학의 강좌 수 변화 추이를 보면 사립대학은 2014년 50만9242강좌에서 2017년 49만1808건으로 줄었다. 또 전임교원 수는 늘고 있으나 전임교원 1인당 교내연구비 지원액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환경이 나을 것" = 또한 정부의 과학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확대로 국가 R&D사업 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나 대학에 대한 투자는 미흡한 실정이다. 대학가에서는 사립대학의 교육환경이 고등학교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서울소재 한 사립대의 전직 총장은 "이공계는 단순 비교가 쉽지 않으니 고등학교 대부분도 갖춘 어학실습실을 놓고 보면 과거에는 대학 시설이 압도적으로 우수했다"면서 "하지만 현재는 외국어고등학교는 물론 투자가 많이 이뤄지는 일반고와 비교해도 경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조사에 따르면 2005부터 2017년 사이에 3000만원 이상 연구 장비 구축 현황을 보면 지자체출연연구소가 25.7%, 정부출연연구소 24.1%이지만 대학은 0.8%에 불과했다. 구입 예산에서도 정부출연연구소가 32.5%인데 반해 대학은 1%에 그쳤다.

또 2016년 기준 연구시설·장비 투자현황을 보면 전체 구축 수는 정부출연연구소(38.4%), 대학(27.2%)로 나타났다. 구축액은 정부출연연구소(42.8%), 지자체출연연구소(18.2%), 대학(13.9%)의 순이다. 개별 기관당 연구시설·장비 구축 수를 보면 정부출연연구소가 평균 27.9점인데 반해 대학의 경우 4.2점에 그쳤다. 예산 면에서도 정부출연연구소가 평균 78억원인데 반해 대학의 경우 평균 4억9000만원에 그쳤다.

이성은 대교협 정책연구팀장은 "첨단 기자재 가격이 비싸져 현재 사업비로는 신규 기자재에 대한 교내외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면서 "예산의 증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자재 노후는 더 급속히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국제 경쟁력 저하 = 이런 상황은 실제로 대학 경쟁력 약화로 나타나고 있다. IMD 국제경쟁력 평가와 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우리나라는 고등교육경쟁력 순위와 국가경쟁력 순위가 동반 하락했다. IMD 대학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014년 50위권으로 급락했으며 2017년 63개국 중 53위의 매우 낮은 수준으로 답보 상태다.

WEF 국가경쟁력 평가의 고등교육 및 훈련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014년에 4단계 학락한 이후 동일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관련 지표 중 대학시스템 질의 순위가 2013년에 20단계 큰 폭으로 하락한 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우리나라 고등교육경쟁력이 위기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장호성 대교협 회장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도 대학은 교육의 주체인 동시에 차세대 인재를 육성·배출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면서 "정부와 국회는 교육력 회복과 재정 확충을 위한 대학들의 현실적 정책 건의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쌈짓돈 논란' 적립금도 줄었다

['위기의 재정, 무너지는 사립대학 연재기사]
① 재정난에 학생 교육·복지 위축 2018-04-23
②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 'OECD 평균의 60%' 불과 2018-04-30
③ "무한경쟁식 대학평가, 재정고갈 가속화" 2018-05-03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장세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