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면택 워싱턴 특파원 현장보고

중동 오만해 유조선 피격…미-이란 충돌위기 고조

2019-06-17 11:17:38 게재

중동지역에서 유조선이 잇따라 공격받은 사태를 놓고 미국이 '이란책임'이라며 응징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미국의 정치공장'으로 반박하고 나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유조선 피격 사태 직전에 미국은 항공모함 에이브라함 링컨호를 페르시아만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 여기에 한때 미군 2만명 중동 증파설이 나와 전운이 짙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됐으나 실제로는 1500명 증파에 그쳐 일단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태 직전에 이란 지도자와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처럼 대화와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다가 유조선에서 불길이 치솟는 장면을 보고서는 180도 입장을 바꿨다.

미국과 이란간 긴장고조는 군사적인 충돌 위험에 앞서 유가가 급등하며 전 세계 석유시장이 출렁이는 경제적 파장부터 불러오고 있다.

게다가 이번 유조선 공격이 이란의 공화국 혁명수비대 소행으로 드러나거나 이란이 석유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설 경우 군사적 충돌 위험마저 급격히 높아질 게 분명해 벌써부터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미국 '이란책임' vs 이란 '정치공작' 긴장고조 = 전 세계 원유의 1/3이나 거쳐 가는 중동해역에서 유조선이 잇따라 공격받고 있다. 오만 해역에서 유조선 2척이 또 공격받은 사태가 발생하자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고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정치 공작이라고 반박했다.

대형 유조선에서 시뻘건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는 장면을 놓고 미국은 미군당국이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하며 이란의 테러 공격으로 암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공격은 이란이 했다"라면서 이란 책임론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국무부 발표를 통해 "이란은 오만해역에서 발생한 유조선 2척에 대한 공격에 책임이 있다"며 이란 배후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은 미군이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하며 이란 혁명수비대가 탄 경비정이 공격당한 유조선 한 척에 다가가 터지지 않은 기뢰를 선체에서 떼어내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이 이번 유조선 공격에 개입된 증거를 없애려 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은 즉각 강력 부인하며 역공을 취했다. 이란은 이번 유조선 공격도 중동지역에 긴장을 고조시켜 군사 행동의 명분을 쌓으려는 미국과 이스라엘 등 지역 동맹들의 정치 공작이라고 반박했다.

미국과 이란이 이번 유조선 공격 사태로 설전에 그치지 않고 격돌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정면충돌로 비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핵합의 파기에 따른 경제제재로 석유 수출이 막힌 이란은 중동산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카드를 쥐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석유수송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져 유가급등을 불러올 것으로 예고된다. 이번 유조선 피격 사태만으로 영국 브렌트유와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2% 넘게 오르는 등 지구촌 석유시장도 출렁이기 시작했으며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되면 5~7%는 더 급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화파 트럼프 vs 주전파 참모들 = 이란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트럼프행정부 내부에서 주화파와 주전파로 분열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협적인 언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확실히 무력충돌은 싫어하는 주화파로 꼽힌다. 반면 대표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물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 등 핵심 참모들은 무력충돌도 불사하거나 아예 전쟁을 유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전파들이다.

이번 유조선 피격 사태를 전후해 보여준 미국의 핵심 지휘부 언급을 보면 주화파는 트럼프 대통령 혼자이고 볼턴, 폼페이오, 섀너핸 등은 모두 주전파로 보인다.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 사이의 역할 분담일 수도 있으나 미주요 언론들 해석을 보면 역할분담 보다는 성향의 차이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조선 피격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까지 이란과도 대화와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그랬던 것 같이 이란의 지도자와 협상할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유조선 피격이 벌어지자 태도를 바꿔 "이번 유조선을 공격한 것은 이란이 했다"고 단정하고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초부터 이란에 대해서는 바로 공격할 것 같은 위협적인 태도를 보여온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폼페이오 국무장관,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 등이 일제히 한목소리로 대이란 강경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 북한, 이란 다루기에 같은 전략 통할까 =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에 대해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여름 '화염과 분노'를 언급해 금방이라도 전쟁을 개시할 것처럼 으름장을 놓다가 1년 후인 2018년 6.12 북미정상회담까지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서도 이번 유조선 피격 사태를 빌미로 전운을 짙게 하며 무력충돌 불사 입장을 내세우다가 이란이 꼬리를 내리면 협상에 나서는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뉴욕 타임스는 분석했다. 하지만 북한과 이란은 상반된 상황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전략으로 다루려 한다면 실패를 맛볼 것으로 이 신문은 지적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절대 권력자인 반면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언제든지 권력에서 밀려날 수 있는 지도부의 한사람일 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사안을 나 홀로 통제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내부나 북한내부의 의견대립과는 상관없이 김 위원장과 관계만 돈독하게 유지하면 톱다운 방식 협상으로 문제를 풀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란의 경우는 최고지도부마저 김정은 위원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유동적이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과 협상하더라도 최소한 트럼프 행정부가 파기했던 핵합의를 되살리는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체면을 손상당하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대통령직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로하니 대통령은 공화국 혁명수비대를 앞세워 강경대응하게 될 것으로 뉴욕 타임스는 내다봤다.

그러면 미국에서도 주화파는 사라지고 주전파들이 득세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도 주전파 참모들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우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이 강대강 대치로 긴장이 급속도로 고조되면 트럼프 대통령이나 로하니 대통령이 통제 불능상태에 빠져 정말로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