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핵시설 폐연료봉 추출부터 다탄두미사일 시험발사까지

2020-02-19 17:49:53 게재

북한의 대미압박 수단·과시방법 다양 … 한미일 총선·올림픽·대선 등 정치일정 주목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협상을 중단 상태로 둔 채 각자의 내부 정치 과제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부터는 양쪽 어디에서도 중단된 북미 실무협상 재개에 대한 언급이 없다다. 미국에서는 최소한 올 11월 3일 대선까지는 비핵화협상의 바퀴를 굴릴 의사가 없다는 신호가 잇따르면서 북미가 올해를 교착 국면 속에 시간을 보내는 '완전한 휴지기'로 보내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1년 휴지기' 행보 = 북한은 현재 코로나19 철통 방어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자력갱생과 제재의 조미대결'을 자강력 강화로 헤쳐 나간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면돌파전 선포에 따라 경제고립의 출로를 열 관광사업의 타격을 무릅쓰고 항공 철도 해상 등 외부와의 통로를 전면 차단했다.

가죽 재킷 차림의 김정은 위원장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2월 16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6일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사진으로, 검은색의 긴 가죽 재킷을 입은 김 위원장의 모습. 연합뉴스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코로나19 방역과 소식과 함께 전국 각 도와 기업, 공장 등에서 벌어지는 자원재활용, 증산, 목표 조기달성 노력 등을 연일 소개하고 있다.

미국은 이달 초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통령 후보 선정을 위한 전당대회로 대선국면에 진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전력을 쏟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데 이어 자신의 최고위 참모들에게 "대선 이전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또다른 정상회담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는 CNN 보도가 나왔다.

이어 마크 램버트, 알렉스 웡 등 국무부 대북 협상팀을 대부분 인사 이동시키자 워싱턴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현상유지 및 관리 전략'에 따라 북미가 1년간의 휴지기를 보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재선에 집중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는 김정은 위원장은 조용한 1년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북, 김정은 언급 실행에 옮길 것" =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의 기류는 이와 다르다. 북핵 협상에 정통한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한은 적절한 시점을 찾아 대미 압박을 위한 도발적 행위에 나설 것"이라며 "이를 예상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달 초 알렉산드르 평양주재 러시아 대사가 말했듯이 최고지도자의 공언을 그대로 이행한다는 '도그마 국가'인 북한이 "세상은 머지않아 우리가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란 김 위원장의 지침을 행동에 옮길 것이란 해석이다.

김 위원장은 연말 전원회의에서 미국의 대화재개 언급이 적대정책 철회를 통한 문제 해결용이 아니라 시간을 벌며 북한을 압살하기 위한 불순한 목적에 악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기 위해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따라 국내 전문가들은 올해 남·북·미 3자의 중요한 정치일정 흐름에 맞춰 새로운 전략무기를 활용한 대미 판 흔들기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전원회의를 통해 그간의 비핵화 대 제재해제의 틀이 아닌 상호 안전보장의 틀로 미국을 상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그간 지켜온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깨지는 않겠지만, 정세변동의 충격을 줄만한 새 전략무기와 타이밍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공언한 새 전략무기와 충격적인 실제 행동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볼지를 가늠해 볼 정치 일정은 3월부터 11월까지 빼곡하다. 올해는 4월 한국 총선과 북한 태양절, 4월 말~5월 초 뉴욕의 NPT(핵확산금지조약) 50주년 평가회의, 7월 하순 도쿄올림픽, 8월 하순 미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 10월 북한 당 창건일, 11월 3일 미 대선 등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당장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주목받는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의 연기나 축소가 아니라 미국의 불참이나 전면 중단을 요구해왔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인 조성렬 박사는 "한미가 기존대로 연합훈련을 진행할 경우 북한은 미사일 등을 바로 발사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중국 내의 코로나19 확산세가 변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미의 훈련 축소 가능성이 있고, 최대 협력국인 중국이 코로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 북한이 이를 의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략무기 시험발사냐 열병식 공개 수준이냐 = 북한이 대미 압박이나 충격 전달용으로 선보일 새로운 전략무기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가장 수위가 높은 건 다탄두 미사일이다. 다탄두 미사일은 한 개의 주탄두 안에 자탄두 5~10개를 넣어 발사하는 첨단기술로 ICBM에 탑재할 경우, 대기권에 진입시 다수의 탄두가 표적을 향하는 탓에 요격이나 방어가 어렵다. 다탄두는 하나의 표적에 여러 개의 재진입 탄두를 투하하는 탄도 유도탄인 MRV(다탄두재집인체)와 재진입 자탄두들이 미리 정해진 각각의 개별 목표를 향하는 MIRV(다탄두각개유도재진입체)가 있다.

조성렬 박사는 “북한이 MRV를 중거리 이내로 시험발사 해 충격파를 던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이 이미 기술을 보유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가능하다. 북한이 수중전략탄도탄으로 부르는 SLBM 북극성-3형은 수중발사대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한 바 있다.

홍민 연구실장은 "SLBM은 대단한 전략무기로 평가받지만 유엔 안보리가 이에 대한 제재를 한 적이 없다"면서 "북극성-3형을 수중 잠수함에서 직접 발사한다면 실전화에 성공했다는 걸 과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스커드ER 미사일이나 노동미사일을 개량해 사거리를 1300km 안팎으로 잡고 일본 상공을 지나는 방식으로 긴장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조 박사는 "북한이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감행할 가능성도 있으나, 이 경우 새로운 전략무기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외에 북한이 우주개발을 명분으로 과거 '광명성1호' 같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지궤도 위성을 올리기 위한 우주발사체이지만, 다단로켓분리와 대기권 재진입 등은 ICBM 기술과 다를 바 없다.

북한이 대미 압박용으로 내세울 전략무기는 이처럼 다양하지만, 실제 시험발사에 나서기보다는 완성된 모습을 공개하는 방식 등으로 수위를 낮춘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사일 발사의 무력시위보다는 영변 폐연료봉 추출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ICBM 신형엔진 출력실험 현지지도, 열병식을 통한 새 전략무기의 전격 공개 등으로 대미 압박을 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8월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맞대응을 명분 삼아 10월 노동당 75주년 창건일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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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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