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지급할 지자체들 셈법 복잡

2020-03-31 12:17:54 게재

정부 지원금의 20% 지자체에 떠넘겨

재정여건·지원범위 따라 금액 제각각

"정부 결단 늦어 형평성 문제 등 초래"

정부가 30일 소득하위 70%(1400만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하면서 이미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한 지자체들이 고민에 빠졌다. 정부는 지자체 차원의 중복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전체 소요예산의 20%를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해 추가 재정지출 요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재정여력에 따라 분담금(20%)만큼 지원금 규모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체 도민에게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주기로 한 경기도는 30일 오후 늦게까지 다각적인 검토를 벌인 결과, '결합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31일 새벽 1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경기도는 이미 정해진 재난기본소득을 그대로 지급하되 경기도 몫 매칭예산을 추가편성하지 않고 정부 몫의 긴급재난지원금만 지급한다"고 밝혔다.

경기도와 별도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도내 시·군도 경기도와 마찬가지다. 아직 별도의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지 않은 시·군만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의 시·군 분담금(10% 예상)을 추가 편성해 지급한다. 이 지사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재난지원금 부담분을 추경으로 보전해 주겠다고 약속한 만큼 지방정부가 먼저 지출하는 재난기본소득을 정부지원금의 매칭으로 인정해 줄 것"이라고 했다.

아직 정부이 세부 시행지침이 나오지 않았지만 경기도가 '결합지원' 방침을 정한 것은 실제 재정부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이 지사는 지난 24일 경기도재난기본소득 지급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털었다"고 했다.

◆서울·대전시 정부 지원금 20%도 분담 = 반면 서울시와 대전시는 정부 지원금의 20%를 분담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정부의 추가 지원 대책과 그에 따른 시 부담액을 감안해 재원을 편성(약 3000억원)했기 때문에 추가 부담이 크지는 않다는 반응이다. 분담비율(20%)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2차, 3차 지원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지급기준을 서울시에 적용할 경우 중위소득 150% 이하까지 혜택을 받게된다. 시는 소득이 가장 낮은 가구부터 중위소득에 해당하는 가구까지 지급하는 중위소득 100% 안을 제시했지만 정부가 이를 소득 하위 70%까지 넓히면서 지원대상이 그만큼 확대된다.

대전시 역시 자체 '긴급재난생계지원금'을 지급하고 정부 지원금의 지자체 분담분(20%)도 부담하기로 했다. 대전시는 최근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가족 수에 따라 30만∼70만원의 긴급재난생계지원금을 지급한다. 이에 따라 대전에 사는 중위소득 100% 이하 4인 가구는 '대전시 긴급재난생계지원금' 56만1000원에 정부가 지급하는 100만원을 합쳐 156만1000원을 받게 된다.

◆대부분 '유보' … 광주·전남 "계획 수정 불가피" = 다른 지자체들은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다각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재난기본소득을 주기로 한 전북 전주시는 이미 3400여명의 신청자가 접수를 마친 만큼 일단 계획대로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전주시의 경우 지원대상자(일용직 등 취약계층 5만명) 대부분이 정부지원금 대상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에 5월 이후 중복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추가 재원부담하는 문제는 정부의 구체적 지침을 보고 판단하기로 유보한 상태다. 대구시와 경북도도 일단 지방의회에서 통과된 생계비 지급에 속도낸다는 방침이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자체 '긴급생계자금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이미 광주시는 지난 23일 긴급 추경예산을 편성해 중위소득 100% 이하 중 기존 지원가구를 뺀 26만여가구에 30만~50만원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전남도도 2110억원(국비 1220억원, 도비 890억원)의 추경을 세우고 이 중 1280억원을 취약계층 긴급 생활비로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긴급재난지원에 따라 광주시의 경우 지원금액 2500억원 가운데 20%인 500억원, 전남도는 1000억~14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해 자체 지원사업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지급기준이 다른 지자체들은 더 셈법이 복잡하다. 인천시의 경우 지난 29일 중위소득 100% 가구에 대해 4인 가구 기준 50만원의 긴급재난생계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한 예산 1220억원도 1차 추경 예산안에 반영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정부와 지급대상이 달라 걱정이다. 소득과 중위소득이 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정부의 소득 하위 70% 기준은 중위소득으로는 150% 정도에 해당한다. 인천의 경우 중위소득 100%는 41만 가구쯤 되고, 소득 하위 70%는 168만 가구쯤이다. 중위소득 150%로 계산하면 지급대상에 차이가 생긴다. 한 자치구 공무원은 "본인이 지급 대상인지, 또는 왜 지급 대상에서 빠졌는지를 묻는 전화 민원이 쏟아질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라며 "상황이 복잡해지니 통일된 기준 요구가 더 절실해진다"고 말했다.

경남도도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과 경남형 긴급재난소득을 통합해 지급할지, 중복 지급할지 검토에 들어갔다. 경남형 긴급재난소득보다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규모와 수혜 대상 폭이 넓어 중복지급하려면 애초 계획보다 예산을 더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여력이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한 것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사는 곳에 따라 지원금 규모가 달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지자체 관계자들은 "중앙정부가 선제적으로 지원책을 발표하고 지방정부가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식으로 대책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중앙정부의 결정이 늦어지면서 혼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명환 홍범택 윤여운 최세호 이제형 차염진 김신일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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