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웨이 배제로 삼성-TSMC 경쟁 격화

2020-05-27 12:15:14 게재

파운드리 능력 확대, 최첨단 칩 개발 러시

닛케이 "보완재이며 대체제인 삼성의 '딜레마'"

삼성전자와 TSMC(타이완반도체제조회사)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이 화웨이를 전면 배제한다는 결정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계의 환경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최근 경기도 화성에 이어 평택에 새로운 생산라인을 짓고 있다고 밝혔다. 평택 생산라인에서 내년 하반기부터 5나노미터칩을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화성과 평택 생산라인은 극자외선(EUV) 공정을 활용해 반도체를 만들게 된다. 현재 칩제조 기술 중 최첨단이다.

평택 생산라인 건설계획은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를 완전 배제하겠다고 발표한 지 일주일도 안돼 나왔다. 새로운 규정은 삼성의 경쟁기업인 TSMC에 큰 타격을 줄 전망이다. 화웨이가 사용하는 핵심 칩의 제조업체이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넉달 간 유예기간을 줬지만, 규정 강화 이전에 주문이 들어간 제품에만 적용된다.

TSMC 역시 최근 미국에 선진 생산시설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웨이퍼 제조에 쓰이는 5나노미터 기술을 활용할 전망이다. 2021년 착공해 2024년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다. TSMC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2021~2029년 대략 120억달러(약 14조7000억원)를 투입한다. 대만에서의 5나노미터 투자는 연구개발비와 선진 칩 제조시설을 포함해 약 7000억타이완달러(230억달러)에 이른다.

삼성은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에 약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평택 생산라인에 얼마나 투자할지 언급을 삼갔지만, 업계에서는 해당 프로젝트에 약 10조원을 지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26일 "전문가들은 삼성과 TSMC의 파운드리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TSMC는 시장의 절반을 지배한다. 관건은 삼성의 입지가 대체재면서 보완재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코뉴코피아 캐피털 파트너'의 반도체 애널리스트인 에릭 첸은 "삼성은 TSMC에겐 가공할 만한 경쟁기업"이라며 "하지만 삼성은 가전제품을 만드는 거대한 제국이기도 하다. 전 세계 그 어떤 기업도 경쟁자 또는 잠재적 경쟁자로부터 핵심 반도체 부품을 대량으로 공급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삼성이 늘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과 이동통신장비 사업에서 삼성과 경쟁하는 관계다. 그럼에도 미국의 배제 결정으로 위기에 직면한 화웨이는 삼성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화웨이는 지난달 "미국이 TSMC 등과 같은 외국계 기업과 우리의 거래를 막는다면, 삼성에 칩 제조를 주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다. '카운터포인트 테크놀로지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의 스마트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20%였다. 화웨이와 애플은 2위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다. 화웨이의 점유율은 17%, 애플은 14%다.

TSMC는 반도체 생산을 수탁하고 있지만 고객과 경쟁하는 소비자사업 부문을 갖고 있지 않다. 에릭 첸은 "TSMC가 전 세계 일류 반도체 개발회사들을 고객으로 보유한 이유"라고 말했다.

5나노미터 파운드리 생산라인 확충은, 삼성이 반도체 수탁생산 부문에서 존재감을 확대하는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삼성은 약 15% 점유율이다. 두 기업은 최첨단 초소형 칩 제조에서도 경쟁중이다. 나노미터 크기가 줄어들수록 칩의 성능은 개선되지만, 생산비용이 크게 늘고 만들기가 까다롭다.

TSMC와 삼성은 나노 경쟁의 선두에 있다. 인텔이 뒤를 따른다. TSMC는 곧 5나노미터 칩을 양산해 조만간 출시될 애플의 5G 아이폰에 공급할 방침이다. 삼성도 올해 하반기부터 5나노미터 칩의 대량생산 체제를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인텔은 그보다 성능이 조금 떨어지는 10나노미터 칩을 올해 하반기 양산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메모리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은 오래 전부터 반도체 수탁생산 부문 선두주자인 TSMC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가졌다. 삼성은 현재까지 일부 성공을 거뒀다. TSMC 핵심 고객사였던 퀄컴과 엔비디아가 일부 물량을 삼성으로 돌렸다.

하지만 과거 삼성과 TSMC에서 프로세스칩을 조달하던 애플은 스마트폰 경쟁사인 삼성을 멀리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핵심은 삼성이 안정적인 고객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삼성이 퀄컴이나 엔비디아는 물론 과거 고객이었던 애플과 자일링스에서도 주문을 확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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