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만 면하면 벌금 1억, 부당이득은?

2021-02-09 12:21:58 게재

위장계열사로 수백억대 부당이득 사례도 많지만 부당이득환수 규정 없어, 공정거래법 보완 필요

공정위 KCC 고발, 효성·SK·하이트진로 조사중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지정자료 허위 제출' 조사·제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로 총수 일가의 차명 지분이나 계열사를 누락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신고누락' 회사는 일감몰아주기 등 대기업집단 관련 규제대상에 제외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17년부터 관련 처벌 수위를 높였다. 자료 허위제출은 총수가 직접 제재 대상이 된다. 고의성·중대성이 커 검찰 고발이 이뤄지면 재벌 총수가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벌금액도 최대 1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높였다.

◆고의성만 소명하면 면죄부 = 하지만 공정거래법은 형사처벌만 규정했을 뿐, 부당이득을 환수할 방법은 없어 문제란 지적이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위장계열사 등으로 수백억대를 챙기고도 형사처벌만 면하면 면죄부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공정위로부터 검찰고발을 받은 대기업들은 대형로펌과 계약을 맺고 적극 방어에 나서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지정자료 허위제출의 고의성 혐의만 벗으면, 최대 '벌금 1억5000만원'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2017년 법 개정 이전 혐의라면 최대 벌금액수가 1억원으로 내려간다.

공정거래법의 이런 규정은 '고의성'이 약한 허위자료 제출 기업들에겐 처벌 사각지대를 만들기도 한다. 일부 애매한 혐의의 기업들에겐 과도한 제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성경제 공정위 대기업정책과장은 9일 "직원 실수 등으로 잘못된 지정자료를 제출한 기업들도 꽤 있지만 과태료나 부당이득환수 규정이 없어 제재수위를 정하기 난감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수백억 부당이득 환수방법 없어 = 실제 공정위가 조사를 진행 중인 일부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위장계열사'로 수백억대 부당이득을 얻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는 이를 '편법 2세 승계'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집단은 총수(동일인) 친족 8촌이나 인척 4촌 이내 특수관계인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는 계열사로 신고해야 한다.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로 지정되면 계열사끼리의 내부거래, 자금대여 내용 등을 공시해야 한다. 부당한 방법으로 일감을 몰아주면 처벌 대상이 된다.

공정위 조사가 진행 중인 하이트진로의 경우 2019년 공정위에 총 17개 계열사가 있다고 신고했다. 기존 12개 계열사에서 송정·연암·대우컴바인·대우패키지·대우화학 등 5개 회사를 추가했다. 이 5개사는 모두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조카와 사촌 등 친인척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하이트진로가 5개사를 계열사로 자진신고한 이유는 법 개정으로 자칫 기업총수가 구속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공정위는 보고 있다.

이들 회사는 내부거래 비중이 매출의 30%~90%까지 이른다. 적어도 매년 수십~수백억원대 부당 내부거래를 해온 셈이다. 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상 이들 5개 기업의 부당이득을 환수할 방법이 없다.

◆국회서 개정안 논의, 불발 = 이 때문에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졌지만, 입법은 결국 불발됐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자료 거부나 거짓 자료를 제출한 기업에 대해 매출액의 10% 또는 최대 20억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부당이득을 과징금 방식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결국 국회 정무위에서 논의되다 불발되고 말았다. 처벌 수위가 과도하다는 재계의 반발과 일부 야당 의원들이 재계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최근 지정자료 허위제출 혐의로 KCC와 태광그룹의 전현직 총수를 고발했다. 또 하이트진로를 비롯해 효성그룹과 SK, 호반건설 등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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