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끝낸 삼성그룹, 향후 지배구조 어떻게 되나

'삼성생명 지배력 확대'로 이재용 체제 구축 … 불확실성 여전히 남아

2021-05-06 11:19:21 게재

삼성생명법 개정안 국회 논의시 '금산분리' 다시 쟁점화 … 계열분리 문제도 장기 과제

고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그룹 지분의 상속 문제가 정리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체제가 일단 마련됐지만 향후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6일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번 지분 상속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동시에 지배하는 '원 삼성'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그렇지만 소위 '삼성생명법'의 국회 통과라는 변수와 여동생들과의 계열분리 등이 장기 과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상속을 통해 삼성생명 지분 10.44%를 소유하게 됐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8.51% 보유하고 있어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장악력은 한층 높아졌다.


◆삼성생명법 통과되면 삼성전자 지배력 약화 = 삼성생명법은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을 말한다. 삼성생명법은 보험회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한도 계산시 취득원가 기준을 시가평가로 변경하고 한도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 관련 회사가 발행한 주식과 채권을 보험사 자기자본의 60% 또는 전체 자산의 3% 중 적은 금액까지만 보유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과 증권 등 다른 금융회사들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시가평가 하도록 돼 있는데 보험회사만 예외적으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현행 보험업 감독규정에 '취득원가 기준'이 명시돼 있고, 이 같은 기준에 따라 혜택을 보는 곳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라서 '삼성특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감독규정 개정권한은 금융위원회에 있지만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박용진·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가평가'로 바꾸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한 것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8.51%(5억815만7148주)로 지난 1980년 당시 취득원가 기준으로 할 경우 금액은 약 5440억원(주당 1072원)이다. 삼성생명 전체 자산의 0.17% 수준이라서 현행 보험업법 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삼성생명법이 통과돼 삼성전자 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4일 종가기준으로 계산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액은 41조9730억원 가량 된다. 전체 자산의 3%인 9조2491억원을 초과하기 때문에 초과분인 32조7246억원 가량의 삼선전자 주식 약 3억9618만주(지분율 6.63%)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게 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88%로 줄어든다. 삼성화재 역시 법적 기준을 초과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하기 때문에 지분율이 현재 1.49%에서 0.56%로 감소하게 된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합산 지분율은 10.00%에서 2.44%로 낮아지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 1.63%, 여기에 삼성물산이 보유한 5.01%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10.00% 등 총수일가와 계열사 합산 삼성전자 지분율은 현재 21.18%에서 13.62%로 하락하게 된다. 삼성전자 지배력이 다소 약화되는 것이다.

◆금산분리 규제와 맞물려 있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 삼성생명법은 단순히 삼성그룹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금산분리 원칙과 연결된다. 금산분리 원칙은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지배를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기관의 산업자본 지배를 막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금융업권 대부분은 금융회사가 다른 기업의 채권 또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때 이를 시가평가하도록 함으로써 유가증권의 실질적 가치를 자산운용에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회사들은 예외를 인정받고 있다. 삼성생명법을 발의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험회사는 보험금을 적시에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하기 위해 자산운용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자산운용비율을 초과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함으로써 보험계약자의 돈으로 다른 회사를 지배하는 현상을 방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장기적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은 금융계열의 분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 상속결과를 놓고 보면 오히려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를 공고히 한 것이다. 삼성의 이같은 상속 결정은 삼성생명법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낮게 전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결국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압박에 몰릴 수밖에 없다.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이어서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발의된 삼성생명법은 시가평가 시행을 최대 7년간 유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으로서는 그동안 지배구조를 개편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주식을 인수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44%를 삼성전자에 매각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하지만 금산분리 문제가 또 부각된다.

현행법상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회사는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된다. 삼성물산이 32조원 상당의 삼성전자 주식을 인수하면 지주사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삼성물산의 자산총액은 54조3317억원으로 삼성전자의 주식가액이 자산의 50%를 훌쩍 넘는다.

지주사로 전환하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일반지주회사가 금융·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 회사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정한 규정에 따라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을 소유하지 못한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분 매각에 따른 막대한 세금 문제와 더불어 삼성물산이 지주회사가 됐을 때 규제를 받게 된다"며 "삼성전자나 삼성생명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여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재판 결과도 변수 = 삼성 금융계열사의 분리 문제와 함께 3남매의 계열분리 등은 장기적인 과제로 남게 됐다.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이번 상속에서 삼성생명을 제외하고는 동일하게 지분을 상속받았다.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 사망 이후 이건희 회장 체계로 전환할 당시 CJ와 신세계, 한솔 등으로 형제들이 계열분리를 했던 것과 유사한 형태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번 상속 과정에서 눈에 띠는 변화는 없었다.

일단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이부진·이서현 자매에게 삼성전자 지분을 동일하게 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삼성전자 주식이 없었던 두 자매는 상속받은 삼성전자 주식을 통해 얻는 배당소득으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사망하기 전까지 총수일가가 지배구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상속과정에서 계열분리를 위한 단초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두 자매가 소유한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지분율이 꽤 높다는 점에서 계열분리 논의가 쉽지 않았고 향후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생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금산분리와 함께 계열 분리가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법적 리스크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시세조종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기소하면서 "최소비용으로 삼성그룹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삼성물산을 흡수합병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이 제일모직의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낮추기 위해 시세조종 등의 행위를 했다는 입장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크게 올라간 것을 의심하고 있다.

합병 이전인 2015년 9월 이전까지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은 0.57%였지만 합병 이후 삼성물산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은 11.84%로 상승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주식이 한주도 없었는데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하면서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16.40%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해 분식회계혐의도 적용했다. 합병 성사 이후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이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자산을 4조원 이상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최소 2~3년의 재판기간이 소요될 전망이고, 법정형이 높은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에 유죄가 인정될 경우 중형이 불가피하다. 박 교수는 "이 부회장 재판결과가 나오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삼성생명법 논의 등과 시기적으로 다 걸려 있어서, 이번 상속으로 삼성생명을 떼어내서 가지 않겠다는 것만 확실해졌을 뿐 나머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게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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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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