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도시를 살린다│서울 관악구 '녹두거리'

녹두전+고시촌 역사품은 '혼밥거리로'

2021-05-20 11:33:49 게재

주민들, 점포마다 공동체공간

5개 권역에 10개 상권 활성화

"택배기사들이 많이 활용합니다. 주민들이 집에 가는 길에 들러 찾아가요." "혼자 사는 사람들은 특히 비대면을 선호하죠. 지난번 '세모녀 사건'도 택배를 매개로 문을 열게 했었잖아요."

박준희(오른쪽) 관악구청장이 대학동을 찾아 점포 앞에 무인택배함 공간을 내준 미장원 관계자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관악구 제공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한 미장원. 젊은 여성들이 주로 찾는 공간인데 점포 바로 앞에 커다란 무인택배함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시설이다. 50여m 거리에 있는 피자집은 13~14명이 이용할 수 있는 방 안쪽 좌석마다 투명 칸막이를 설치해 공부방으로 바꿨다. 식사와 함께 독서 학습이 가능한 이곳은 이른바 '공부가게'다.

대학동 녹두거리는 관악구가 민선 7기 들어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는 10대 골목상권 가운데 하나다. 전국 어느 지자체나 '전통시장·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한 정부 지원에 발맞춰 상권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관악구는 주민 생활권과 밀접한 골목단위에 주목했다.

대로변이 아니라 거주지 안에 있는 좁은 도로를 따라 형성된 64개 골목상권을 대상으로 기초자료 파악을 위한 연구용역을 지난해 초 진행했다. 등록·인정 전통시장이나 상점가를 중심으로 예산을 투입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골목상권은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점포 밀집도와 거주·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기준으로 5개 권역별로 두곳씩 10대 상권을 선정했다. 공공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가까운 골목상권 발달까지 견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정했다. 관악구 관계자는 "골목상권은 거주지 주변에 음식점 소매업 서비스업 등 생활밀접 업종으로 구성돼있어 경제지표 변화에 민감하다"며 "특성화 주민밀착 주변연계 세가지 형태로 경쟁력을 키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녹두거리는 관악구 면적 40%를 차지하는 대학 지역생활권에 속한다. 1980년대 학생들에 익숙한 녹두전과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몰린 고시촌 역사를 간직한 골목이다. 고시생이 줄어들면서 지역상권이 쇠퇴한 상황인데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혼밥집' '혼술집' 등이 많다.

관악구는 서울시 생활상권 활성화 사업과 연계해 작은 골목과 업종별로 정량적 경제진단을 하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 조사를 진행했다. 올해 초 주민과 상인 등 300여명이 참여한 조사 결과 중고거래 안심택배 함께배송 공부가게 등 주민 생활과 연계한 공동체공간을 확보, 지역과 상권이 함께 성장하자는 우선 목표를 정했다. 특히 서울대 소극장 박종철거리 등 지역자원을 연계, 청년과 1인가구를 위한 거리를 조성한다.

미장원 대문을 차지한 무인택배함이나 피자집 한켠에 자리잡은 공부방은 주민들 희망사항이 반영된 공동체공간이다. 분식집은 고객들을 위한 책꽂이에 다양한 읽을거리를 비치했고 점포 앞에 대기고객과 주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쉼터도 조성한다. 김태수 생활상권추진위원장은 "상인들이 공간할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벌써부터 주민들 기대가 크다"며 "중고물품 거래와 공구·우산대여 서비스도 곧 시작한다"고 말했다.

전봇대 지중화와 지역예술가를 활용한 점포·제품 디자인 개선, 경영컨설팅 전문가와 공무원이 찾아가는 간담회 등 유·무형의 지원도 여럿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지역·주민자원과 연계해 테마골목을 조성하고 전통시장과 상생효과를 창출하겠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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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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