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현장보고

미국, 한미정상회담 계기 글로벌 백신외교전

2021-05-25 12:00:07 게재

미국이 전국민 백신접종 작전에 이어 본격적으로 백신외교전에 나섰다. 지구촌 백신접종에 일조해 코로나19 위기극복에 앞장서 글로벌 지도력을 되찾겠다는 야심찬 의도다.

미국은 5개 제약사의 국내 백신 생산을 최대화하는 한편 ‘쿼드동맹’인 인도에 이어 한국과 체결한 백신 파트너십을 타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백신과 재원 기부를 증액하는 방법으로 글로벌 백신 외교전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바이든행정부는 그동안 자국민 백신접종에 올인하는 바람에 글로벌 백신 전략에 소홀했다는 나라 안팎의 비판을 받아왔다. 국제적 지원에 계속 늑장을 부리면 중국 러시아 등 전략적 경쟁국들에 뒤처질 것이라는 경고를 받아왔다. 이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한미 백신 파트너십 구축을 계기로 글로벌 백신 외교전에 본격 나서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전국민 60% 이상 접종하며 여유 생겨

미국에서 한번 이상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전체 국민의 60%에 도달했다. 때문에 글로벌 백신 외교전에 나설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바이든행정부의 글로벌 백신 전략은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한미간 백신 파트너십이 확정되면서 부각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의 제프 자이언츠 코로나19 조정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공동 책임자를 맡고 국무부와 대외원조처(USAID), 보건복지부 등의 전문가들이 글로벌 백신전략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외교관들은 “지금 당장 백신을 원조하지 않으면 백신외교전에서 중국과 러시아에게 지게 될 것”이라며 아우성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로 미루어 미국은 자국민 백신 접종 최우선 전략에서 이제는 지구촌 백신접종 지원으로 눈을 돌려 다방면의 전략을 총동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백신 생산과 배급, 접종에 가속도를 내고 확산시켜 코로나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의 지도력을 되찾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지구촌 초강대국 자리를 놓고 겨루는 중국과의 치열한 파워게임이자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퇴색시킨 미국의 대외 이미지와 위상을 회복하는 차원으로 관측된다.

미국의 글로벌 백신 전략은 첫째, 자국민들의 백신 접종률을 집단면역이 시작되는 70%에 도달하기에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은 올 가을이나 내년 상반기에 3차 접종이나 변이바이러스에 대응한 추가접종에도 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내에서 긴급사용을 통해 접종에 사용되고 있는 화이자와 모더나, 존슨앤존슨 백신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하지만 사용하지 않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승인이 5월에서 7월로 지연된 노바백스를 포함한 5개사의 미국내 백신생산을 극대화하고 있다.

바이든행정부는 화이자와 모더나, 존슨앤존슨 등 3개사의 백신을 3억도스 이상 건네받아 배포 접종한 데 이어 7월 말까지 3억도스를 추가로 확보했다. 이들 5개사의 미국내 백신 생산량은 6월과 7월이 되면 매달 2억도스에 달한다. 올 가을에는 매달 3억도스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국 등과 백신 파트너십, 위탁생산 확대

둘째, 백신 생산능력이 있는 각국과 백신 파트너십을 체결해 현지 위탁생산을 할 방침이다. 해당국 국민부터 백신접종을 하게 하는 것은 물론 주변 상황이 심각한 국가들에 백신을 긴급 제공하는 전략이다.

한국의 삼성 바이오로직스와 미국의 모더나사가 합의해 올 3분기부터 수억도스 분량의 모더나 백신을 생산키로 한 것은 백신 파트너십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모더나 백신은 미국 기업 모더나와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소장으로 있는 미 국립전염병 연구소가 공동 개발한 것으로, 미국 내에서는 화이자 못지 않은 명성을 얻고 있다.

빠르면 7월이나 8월 한국에서 모더나 백신생산이 본격화되면 한국민의 백신 접종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민이 모두 접종하고도 여유분이 생길 경우 동남아 등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수출하거나 기부한다. 한국이 백신 허브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국에 앞서 미국의 쿼드 동맹인 인도는 양국의 백신 파트너십에 따라 백신을 위탁 생산한다. 인도 기업 바이오로지칼 E가 내년 말까지 존슨앤존슨 백신 10억도스를 생산할 방침이다.

미국 백신 직접 제공이나 기부

셋째, 미국이 직접 백신을 제공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공동회견에서 “한국군 55만명 에게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백신을 직접 제공한다는 데 무게감이 있다. 한국측이 희망한 백신스와프는 아니지만 한미동맹 차원에서 주한미군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한국군 전체를 접종하고 남을 백신을 제공한다는 약속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기대에는 못미치겠지만 바이든행정부는 한미 양국군의 건강과 전투력 유지를 우선순위에 두는 묘수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6월 말까지 미국서 생산하지만 사용하지는 않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6000만도스 전량과 접종에 사용중인 화이자 모더나 존슨앤존슨 2000만도스 등 모두 8000만도스를 외국에 수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등은 외국에 1500만도스씩 보내고 있다”며 “미국은 그들보다 5배나 많은 백신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전략적 경쟁국들과의 백신 외교전에서 앞서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8000만도스 중 상당수는 가장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쿼드 동맹 인도, 그리고 네팔에게 직접 제공될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내다봤다.

넷째, 한국은 백신 수급 일정을 조정하는 것으로 백신 스와프를 희망했지만, 미국은 이웃 멕시코와 캐나다에게 적용하고 있을 뿐 이를 확대하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미국서 생산하지만 사용하지는 않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400만도스를 멕시코에 270만도스, 캐나다에 130만도스를 제공한 바 있다. 멕시코에는 추가로 500만도스를 제공키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백신 생산량과 자국민 접종 상황, 향후 국내 수요까지 고려하면 수급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해 줄 수는 없기에 타국과의 백신 스와프 확대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세계기구에 자금출연, 최빈국 간접 지원

다섯째, 미국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글로벌 백신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에 40억달러를 출연하기로 약속하고 현재까지 25억달러를 지원했고, 추가 기부를 고려하는 중이다. 6월 중순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서 선진 7개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G20 국가들도 더 많은 출연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코백스는 지구촌 백신 기금으로 117억 달러를 책정했으나 4월 현재 86억달러에 그쳐 31억달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 기금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92개 최빈국들은 사실상 무료로 백신을 공급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코백스는 117억달러로 백신을 구입해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최빈국 92개국의 인구 20~25%를 접종시킨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목표에 못 미치고 있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