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롱특허' 무엇이 문제일까

2021-08-17 12:10:48 게재
정종완 대한변리사회 상임이사

최근 특허업계에서는 정부 출원연구기관(출연연)의 '장롱특허'가 화두다. 대한변리사회가 개발한 특허평가시스템인 '엑시스벨류'를 이용해 출연연의 특허를 평가한 결과 10개 중 6개가 활용가치가 없거나 부족한 소위 '장롱특허'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과 출연연의 특허 활용율이 33.7%에 불과하다는 특허청의 지식재산활동 실태조사 결과와도 일치한다.

폭넓은 연구 필요, 특허는 달리 접근해야

반대의견도 있다. 쓸모없는 장롱특허는 없다는 것이다. '쓸모있음은 쓸모없음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존재하고 기능할 수 있다'는 장자의 외물(外物)편 고사 같이, '장롱특허'가 많아야 쓸모있는 '주전특허'도 많아질 수 있게 된다는 논리이다.

나름 설득력 있는 논리지만 그 대상은 '특허'가 아닌 '연구성과물'(발명)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시행착오적 연구 등이 많아야만 이를 기초로 한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출연연의 연구는 기초분야와 응용분야에 걸쳐 폭넓게 이뤄져야 하며, 반드시 성과가 우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성과물'이 많을수록 이들 중 빛이 나는 연구성과물(예를 들어 원천기술)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연연의 '발명'은 다다익선이 다. 그러나 '연구성과물'에 기초해 권리를 주장하는 특허는 예산지출 등을 고려할 때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연구성과물 중에는 AI나 블록체인, 코로나 백신 등 주목받는 기술 분야의 발명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면 연구성과물 중에는 기존에 연구되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원천기술)도 있고, 원천기술을 개량한 기술(징검다리기술)도 있으며, 완성도나 활용도가 낮은 기술(시행착오적 기술)도 있고, 특허등록만을 목표로 하는 기술(실적쌓기용 기술)도 있다.

이처럼 편차가 있는 기술들의 특허확보를 위해 동일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까? 예를 들어 위에서 분류한 기술의 중요도 순으로 판단했을 때, 시행착오적 기술과 실적쌓기용 기술의 경우 특허확보를 위해 시간과 예산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특허가 될 가능성이 낮고 특허가 되더라도 활용가치가 낮은 소위 장롱특허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구성과물 권리화 비용은 적절했나

만일 시작 단계(출원 단계)에서 해당 기술의 중요도를 판단하기 어려워 미리 비용을 예측하는 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원천기술 내지 징검다리기술을 기준으로 비용을 산출해야 한다. 특허의 질은 담당 변리사의 능력과 그의 투입 시간 및 노력(비용)에 비례하기 때문에, 시행착오적 기술이나 실적쌓기용 기술을 기준으로 비용을 산정한다면 좋은 기술도 장롱특허로 전락할 가능성이 그 만큼 높아지는 셈이다.

2019년 말 심영택 뉴욕주립대 교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대학의 특허출원 한건당 대리인 비용은 한국이 평균 116만원, 일본 356만원, 미국 900만원, 태국 401만원, 말레이시아 343만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연구성과물'의 특허 확보를 위한 비용투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이번 '장롱특허' 논란을 계기로 GDP 대비 R&D 투자 1위인 우리나라가 연구성과물의 권리화를 위해 투자하고 있는 비용이 적절한 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원천기술 같은 주요 연구성과물이 장롱특허로 둔갑해버리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