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공공기관 추가이전, 지방 '부글부글'

2021-11-01 11:45:59 게재

반복되는 문재인정부 말 바꾸기

"최소한 기준·방안이라도 밝혀야"

수도권 공공기관 2단계 이전이 또 다시 안개 속이다. 현 정부 안에 최소한 이전대상 기관·계획이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했던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는 또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지난달 말 김부겸 국무총리의 발언이 발단이 됐다. 김 총리는 지난달 26일 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대한민국 균형발전박람회 개막식'에서 "우리 정부가 준비를 잘 해놔야 다음 정부에서 차질 없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며 "국토균형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자체별 의견을 모아 공공기관 이전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언은 김 총리가 지난 9월 말 지역민영방송협회 특별대담에서 "올해 가을에 큰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발언과 대비된다. 앞서 그는 지난 9월 초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곧 문재인정부의 의지와 방향을 밝힐 것"이라고도 했다.

'큰 가닥'은 '준비 또는 기반'과 격차가 크다. 지역에선 '큰 가닥'의 의미를 최소한 이전 계획으로 해석했다.

정부의 분위기 반전은 지난 10월 14일 열린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 행사에서 이미 예고됐다. 비수도권에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긍정적 발언을 기대했지만 이날 아무런 발언이 없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비수도권 시민사회단체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을 추진했던 광주전남·대구·부산·충청권 공동대책위와 지방분권전국회의는 공동으로 지난달 26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10개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112개에 불과하며 이는 혁신도시가 지역발전을 견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라며 "문재인정부는 공공기관 추가 이전 계획을 임기 내에 확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지역별로 공공기관을 배분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현재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공공기관이 설립한 기업의 이전과 잔류의 기준을 마련하고 이전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수준에서 이전 계획을 수립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자회사·출자회사·재출자회사를 지방 이전 대상으로 규정하도록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 △비수도권 단체장들의 정부 발표 수용 약속 △비수도권 단체장들 공공기관 추가 이전 청와대 회의소집 등을 촉구했다.

비수도권 다른 지자체들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부의 말 바꾸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고문'이라는 한탄까지 나온다. 단체장들은 대통령을 만날 기회마다 혁신도시 이전 계획 수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

충청권은 대전시와 충남도가 혁신도시로 추가 지정된 만큼 어느 곳보다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충청권 지자체 한 관계자는 "정부와 각 권역별로 추진하고 있는 메가시티의 거점도시로 혁신도시를 세우려면 현 정부 안에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시 한 관계자 역시 "당초 약속대로 현 정부 임기 안에 추진되길 희망하고 있으나 또 다시 연기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대구시도 중소기업은행을 비롯해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한국의료인국가시험원 등 17개 공공기관의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비수도권은 현 정부가 큰 가닥을 잡지 않을 경우 자칫 혁신도시 2단계 공공기관 이전사업 전체가 표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을 공언해왔던 현 정부가 못한 일을 차기 정부에서 실행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더구나 대선에 이어 곧바로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는 만큼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라는 뜨거운 감자에 손대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논의 자체가 사라졌던 만큼 정부의 최근 입장 변화도 대선과 관련지어 해석하고 있다.

이상선 충청권 공동대책위원회 상임대표는 "정부여당이 공공기관 이전을 끊임없이 공언했지만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시점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며 "민감한 사안은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다음 정부에서 되돌릴 수 없는 기본적인 로드맵을 발표하는 게 현 정부의 책임있는 자세"라고 주장했다.

윤여운 최세호 방국진 기자 yuy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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