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찰 지키던 '초소' 시민 쉼터로 탈바꿈

2021-12-09 11:33:38 게재

종로구 인왕산 초소책방·숲속쉼터

기관간 협업으로 철거 대신 재생

인왕산 정상에서 서울 종로구 부암동 방향으로 향하다 수성동계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계절이나 날씨와는 무관하게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군인들이 사라진지 오래다. 2018년 6월 인왕산이 전면 개방되면서다.

1968년 북한군이 청와대를 기습하려던 일명 '김신조 사건' 이후 방호를 위해 군과 경찰이 주둔했던 공간이 시민 전체가 누릴 수 있는 쉼터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청운효자동 '인왕산 초소책방'과 지난달 개방한 '인왕산 숲속쉼터'다.

종로구는 철거할 예정이던 경찰초소를 북카페인 초소책방으로 재생시켰다. 인왕산과 서울 도심 풍경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고 책과 차 간식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사진 종로구 제공


1993년 일부 개방된 이후 인왕산을 찾는 시민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시작된 이후에는 청년층과 외국인 등산객이 크게 늘면서 사회관계망에 사진과 함께 공유하는 '성지'가 되다시피 했다.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나 휴식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는데 일대는 군사통제구역 도시자연공원 구역 등 다양한 규제에 묶여있어 신규 건축이 어렵다.

종로구는 우선 철거예정이던 초소건물에 주목했다. 인왕산을 전면 개방하면서 경찰병력이 축소·이전되면서 기존 초소를 철거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국유재산을 지자체에 양여할 수 없다며 목적이 없어진 시설인 만큼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구는 주변 산세와 전망이 수려한 공간을 철거하는 대신 재생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전문가 자문을 통해 국유재산 무상양여가 가능하다는 법 조항을 찾아냈고 청와대 군 경찰 등 관련 기관과 50차례 이상 협의에 나섰다. 2019년 3월 소유권 이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경찰초소를 복합휴게공간으로 바꾸기로 하고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공공건축가인 이충기 서울시립대 교수 등 전문가 자문에 주민 대상으로 설명회도 수차례 열었다.

훼손된 자연 환경을 복원하고 북카페와 전망대 등을 갖춘 '초소책방'을 마련했다. 기존 철근 콘크리트 골조를 살려 증축·대수선해 1층 책방과 2층 전망 쉼터로 꾸몄다. 건물 내 어디서나 인왕산과 서울 도심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인왕산 일대 최초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도 배치했다.

300㎡ 남짓한 공간을 찾는 방문객은 평일이면 200명, 주말이면 50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다양한 책과 음료 간식은 물론 작가와 함께 하는 고민상담이나 음악공연 특별강연 등 프로그램을 찾는 시민들 발길이 꾸준하다.

초소책방 위쪽 인왕산 중턱에 있던 군 초소는 등산객을 위한 휴게쉼터와 숲해설·전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국방부와 공동사용협약을 체결한 뒤 하부 콘크리트 구조는 그대로 살리고 목재 기둥을 세우고 나무 지붕을 씌웠다. 212㎡ 1층 건물에는 다목적실과 쉼터 화장실 등을 배치했다. 3면이 유리로 돼있어 키큰 나무와 숲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지난달 문을 열자마자 하루 50~70명이 찾고 있다.

두 공간은 협업 사례로 주목받을 뿐 아니라 공공건축물로서의 의미도 크다. 지난해 초소책방으로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상을 받았고 숲속쉼터는 올해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받았다. 종로구 관계자는 "인왕산 자락의 수려한 경치를 즐기면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책방과 쉼터는 혼자도 좋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해도 좋은 공간"이라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주민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재충전하며 몸과 마음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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