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국의 사법개혁과 변리사 소송대리

2022-07-05 10:45:09 게재
김성기 특허법인 광장리앤고 변리사

영국에서 소송은 판결에 대해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당사자 만족도 또한 높지만, 소송비용이 많이 들고 오래 걸리는 것으로 악명 높다. 특허 등 지식재산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특허관련 소송에서 법정변호사(barrister)와 사무변호사(solicitor), 변리사 간의 업무 영역을 구분해 칸막이를 세워놨기 때문에 특허침해소송을 진행하려면 변리사 외에도 법정변호사, 사무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해야 했다.

영국, 변리사 대리권 범위에 제한 없애

1990년대에 들어서 영국은 이러한 폐해를 없애기 위해 특허침해소송을 변리사 단독으로 대리할 수 있게 하는 한정된 관할권을 가진 특허법원을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제한된 범위에서 시도해 본 이러한 특허소송제도 개혁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2007년 법률서비스법(Legal Services Act 2007)을 제정해 변리사가 대리하는 특허침해사건에서 손해배상 규모 등 대리권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물론, 특허침해소송의 항소심 및 대법원 상고심까지 변리사 단독으로 소송대리가 가능하게 했다. 보수적으로 유명한 영국사법 역사상 획기적인 변화다.

영국은 소송대리제도의 혁신과 더불어 1888년부터 '특허대리인'이라는 의미로 100년 이상 사용하던 '패턴트 에이전트'(patent agent)라는 법정 용어를 '패턴트 어토니'(patent attorney)로 개정했다.(저작권 디자인 특허법, CDPA 1988 제275조) 특허관련 대리업무에서 변리사의 역할이 일반법률 사건에서 사무변호사가 하는 역할에 대응되는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동시에 영국변리사회(CIPA)에 등록하지 않은 사람은 변리사의 명칭인 'patent attorney'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으며, 또한 'patent agent'와 같은 유사한 명칭 사용도 금지시켰다.(CDPA 1988 제276조) 이러한 변화에 따라 2012년 12월 31일 기준 변리사 등록부(Register of Patent Agent)에 등록되어 있던 모든 변리사를 'Patent Attorney'라 부르기 시작했다.

특허 분쟁에 변리사 전문성 인정 추세

영국의 이러한 변화는 전반적인 사법서비스 체제의 개혁과 함께한 것이지만, 변리사를 'patent attorney'로 부르는 국제적 현실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종전에 영국 변리사가 유럽 특허청에 대리하는 경우에는 '유러피언 패턴트 어토니'(European Patent Attorney)라 하는데, 정작 자기 나라 안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것을 바로잡은 것이다.

내년 초 개원을 앞두고 있는 유럽통합특허법원(UPC, Unified Patent Court)에서도 변리사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럽통합특허법원에서는 유럽 17개국에 걸쳐 특허무효 소송은 물론, 특허침해금지 소송, 손해배상 소송, 특허권리범위확인 소송 등을 관할한다.

유럽통합특허법원의 소송대리는 가맹국내의 법원에서 소송대리를 할 수 있는 변호사, 또는 유럽 특허청에 등록된 유럽변리사(EPA, European Patent Attorney)가 하는데, 모든 소송대리인은 단독으로 소송대리를 할 수 있다. 특허전문가인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을 대리하는 이러한 세계적 추세는 21세기 과학기술의 꽃인 특허를 둘러싼 분쟁에 어떠한 전문성이 필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