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베이비박스, 유엔아동협약 배치"

2022-08-24 11:18:30 게재

"공적 지원 미비한 상황에서 불가피" 반박도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베이비박스' 설치를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베이비박스가 오히려 아동보호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는 23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헌법과 국제인권기준, 법률에 위반되는 베이비박스 설치 및 지원 조례 제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주장했다.

민변은 "베이비박스 설치가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명백히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해당 협약은 대한민국이 비준해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협약은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되고, 출생시부터 성명권과 국적취득권을 가지며, 자신의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제7조), 가족관계를 비롯한 신분을 보존받을 수 있는 권리(제8조), 자신의 의사에 반해 부모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권리(제9조)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10월 대한민국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부모의 법적 지위 또는 출신지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출생신고를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권고하면서 "종교단체가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아동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라"고 강조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05년 오스트리아, 2007년 슬로바키아, 2011년 체코, 2014년에는 독일과 러시아 등에서도 베이비박스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베이비박스를 금지하고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를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는 것이 민변 설명이다.

베이비박스를 설치·지원하는 조례안은 현행 '아동복지법' 개정취지와도 배치된다는 것이 민변 주장이다. 2020년 12월 개정된 아동복지법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 이외의 자가 보호대상아동을 발견하거나 보호자의 의뢰를 받은 때에는 지체없이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보호조치를 의뢰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한 공적 지원의 출발을 지방자치단체로 일원화한 것으로, 이에 따라 부모 등 입양 관련 상담은 입양기관이 할 수 없고 지방자치단체의 아동보호전담요원이 담당하게 됐다. 따라서 현재 베이비박스측이 하고 있는 부모 상담 및 아동보호조치는 아동복지법에 정면으로 위반된다는 것이 민변 설명이다.

아동복지법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외의 자가 아동복지시설을 설치할 경우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신고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변은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설을 지원하고자 하는 이 조례안은 법률의 체계정합성에도 반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베이비박스 설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23일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주최한 '베이비박스 설치 및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 공청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사무국장은 "부모의 불가피한 사정이나 위기 임신, 아기의 장애, 출생 신고 사각지대 등 이유로 유기 위험에 노출돼 있는 아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생명보호 장치"라며 베이비박스 필요성을 주장했다. 해당 조례를 발의한 제주도의회 송창권 환경도시위원장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24일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한 공적 지원이 미비하거나 이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민간 내지 종교에서 현실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며 "베이비박스가 아동 유기를 조장하기는커녕 영아살해나 낙태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안성열 기자/변호사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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