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고준위 방폐장 조기 건설과 RE100

2022-10-06 12:06:49 게재
삼성전자와 삼성SDI가 국내외 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전부를 2050년까지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캠페인인 이른바 RE100에 가입했다. 현대자동차·SK·LG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진즉 RE100에 가입했으나 가입을 미뤄왔던 삼성이 마침내 글로벌 기업들의 친환경 움직임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의 RE100 가입 선언은 글로벌 무역장벽을 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하겠다. 납품 조건으로 RE100 가입을 요구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이젠 RE100 가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등은 우리 대기업과 납품업체들이 RE100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2040년까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산업의 수출이 최대 40%까지 급감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재생에너지 총량, 기업 수요에 턱없이 부족

문제는 한국의 태양광 풍력 조력 등 재생에너지 생산 총량이 우리 기업들의 RE100 수요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이 전체의 20.1%를 차지,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대부분 30~40%에 달하는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이 부족하면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위해 어쩔수 없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에 나설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국내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갈 우려도 크다.

그러나 한국은 재생에너지를 늘리기가 쉽지 않다. 일조량과 바람의 세기가 독일과 영국 등의 1/3 수준에 불과한 데다 입지 선정에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기는 정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출력이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는데 태양광과 풍력은 낮과 밤, 구름 존재 여부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해 전력 계통망을 불안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제조업 비중이 높아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필수적인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단점이다.

우크라이나전쟁과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 등으로 야기된 작금의 에너지 위기 속에서 전세계가 신재생 에너지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의회는 과도기적으로 친환경 역할을 할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판단, 원자력과 천연가스 발전을 까다로운 조건부로 친환경 에너지 범주에 포함시키기로 하는 등 세계 주요국들이 원자력 발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원전은 무척 위험한 방사성 폐기물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EU 의회는 오는 2025년까지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고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방폐장)을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는 경우에 한해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받기 위해 현재 녹색분류에서 제외된 원전을 금년중 녹색분류 체계(택소노미)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오늘(6일) 공청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한국 원전은 세계에서 친환경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친환경으로 인정받으려면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해야 하나 아직 부지 선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가 확정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에 따르면 부지 선정 절차 착수 후 20년 내에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37년 내에 영구처분시설을 완공하는 것으로 돼 있다. 따라서 올해 부지 선정에 착수하더라도 고준위 방폐장은 2060년이나 돼야 완공될 수 있다.

또한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 시기도 EU보다 6년이나 늦은 2031년으로 제시됐다. 그나마 이 때까지도 전면 도입이 아닌 '도입 촉진을 유도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실제 원전에서 사용되는 시기는 더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원전, 고준위 방폐장 없으면 녹색분류 인정받기 어려워

원전을 항구적으로 운영하려면 언젠가는 반드시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해야 한다. 국내 26기 원전에서 지금까지 생성된 고준위 방폐물은 1만8000톤이나 된다. 이들은 원전 내 저장시설에 임시 저장되어 있고 이마저도 2030년 이후에는 원전별로 차례로 포화 상태가 된다. 향후 원전 가동률이 올라가면 더 빨리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어차피 해야할 일인 만큼 이번 기회에 고준위 방폐장 조기 건설 계획이 시급히 마련돼 한국 원전이 국제적으로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