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일본에서 배운다 | ①유기견 보호사업으로 주목받는 진세키고겐정

유기견 보호사업으로 고향납세 모금 발판

2023-06-13 11:28:06 게재

민간단체·플렛폼 연계협력 성공 열쇠

인구 7700명 소멸위기 지자체 돌파구

진세키고겐정은 우리나라의 군에 해당하는 행정기구다. 우리보다 앞서 지역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2004년 히로시마현 내 4개 정·촌을 통·폐합해 만든 지자체다. 인구는 올해 3월 기준 7699명. 경북 울릉군(9085명)보다 인구가 적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여있던 이 작은 지자체는 고향세를 활용한 '피스완코(유기견보호) 프로젝트'로 단번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유기견 보호사업 계기로 관심 = 이 사업을 처음 제안한 건 피스윈즈재팬(Peace Winds Japan)이라는 국제긴급구호단체다. 이 단체 대표 오니시 겐스케가 2010년 우연히 살처분 직전이던 유기견 '유메노스케'를 구조해 구조견으로 훈련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생후 4개월이던 유메노스케는 3년여간의 훈련을 거쳐 2014년 8월 20일 히로시마 산사태 재해현장에 처음 투입됐고, 첫 임무에서 실제 사람을 구조했다. 이후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등 국내외 각종 재난현장에서 활약하며 수십명의 생명을 구했다. 유메노스케는 '사람이 죽이려던 개가 사람을 구했다'는 말과 함께 일약 전국적인 스타가 됐고, 덩달아 피스완코 프로젝트도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른바 '이야기거리'가 된 셈이다.

유메노스케가 구조되던 즈음 일본은 한해 살처분되는 유기견이 16만마리(2011년 기준)였다. 특히 진세키고겐정이 속한 히로시마현에서는 일본 광역지자체 중 가장 많은 8340마리가 도살됐다. 하지만 피스완코 프로젝트가 시작된 2013년부터 살처분이 현격히 줄어들어 2016년 드디어 '0'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7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피스윈즈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진세키고겐정에 마련한 보호시설에서 그동안 7600여마리의 유기견을 보호했고, 이 중 절반이 넘는 3612마리를 새 가족에게 입양했다. 최근에는 고령자들을 위한 테라피견 분양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현재도 2600여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현 진세키고겐정은 인구 7700명인 소멸위기 지자체다. 하지만 최근 고향납세 제도를 통해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업을 전개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이시오 요시노리 진세키고겐정장이 한국 연수단에게 고향납세 정책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일본 진세키고겐정 = 김신일 기자


◆행정 한계, 민간과 협력해 극복 = 피스윈즈는 피스완코 프로젝트로만 지금까지 400억원 가까운 기부금을 모았다. 지난해 모금액만 46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일반 기부금까지 더해지면서 연간 모금액이 166억원에 이르렀다. 또한 100여명의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했다. 올해 새로 채용한 인원만 22명이다. 기부자들에게 지역에서 생산한 쌀·포도·소고기 등을 답례품으로 제공하면서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불러왔다.

피스완코 프로젝트의 성공은 진세키고겐정에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유명세를 타고 관광객들이 모여들었고, 이는 새로운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고향세 기부의 가능성을 확인한 진세키고겐정은 다양한 목적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진세키고겐정은 현재 13개 사업을 민간단체 기금모집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피스완코 프로젝트는 물론 교통약자 차량지원, 원격진료, 빈집은행(아키아뱅크)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열악한 재정상황에서 행정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업들이다.

교통약자 차량지원 사업은 우리 지자체들이 하고 있는 '100원 택시'와 비슷한 제도다. 진세키고겐정에서는 민간단체가 고향세를 모금해 진행한다. 원격진료 사업은 관리 대상자들에게 건강이나 활동 체크가 가능한 기기를 나눠주고, 모아진 정보를 분석해 건강관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73명을 대상으로 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 진세키고겐정을 거점으로 유기견 보호사업(피스완코)을 벌이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NPO) 피스윈즈재팬은 최근 보호 유기견을 고령자를 위한 테라피견으로 훈련시켜 분양해 호평을 받고 있다. 사진 피스윈즈재팬 제공


아키아뱅크 사업도 성공적이다. 인구가 줄면서 늘어난 빈집을 이주 희망자들에게 소개해주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이 사업으로 117건의 매매와 70건의 임대가 이뤄졌다. 사용계약(2건)과 증여(1건)까지 더해 180개의 빈집이 새 주인을 찾았다. 아키아뱅크 사업주체인 비영리민간단체 니나(NINA) 대표 우에야마 미노루씨는 "민간이 모금한 고향세와 지자체의 마을사업 예산이 결합함으로써 골칫거리인 빈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모금주체 열어둔 열린행정 결실 = 진세키고겐정은 고향세 모금주체가 다양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지자체가 직접 마을시책 사업으로 2억3500여만원을 모금했고, 지역 주민조직인 자치진흥회도 450만원을 모았다. 학교법인 2곳도 지난해부터 모금을 시작했는데 모금액이 4640만원에 이른다. 비록 모금액이 18만원에 그쳤지만 협동지원센터라는 민간조직도 고향세 모금에 도전했다.

모금액이 가장 많은 곳은 역시 비영리민간단체다. 지난해에만 무려 70억원을 모금했다. 지역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목적사업도 충실히 소개해 얻은 성과다. 시모조노 료타 진세키고겐정 미래창조과장은 "고향세 기부자의 80%가 도쿄와 수도권지역 주민들"이라며 "기부자들에게 도시의 매력이나 사업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한다면 관계인구를 형성할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지역발전을 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세키고겐정의 지난해 고향세 모금액은 78억5646만원(추정)이다. 지역의 한 재력가가 거액을 기부해 모금액이 급증한 2020년(107억41만원)을 제외하면 역대 최대규모다. 이는 일본 전체 1788개 지자체 중 250위에 해당한다. 히로시마현에서는 우리나라 군에 해당하는 정 중에서 가장 많다. 이시에 요시노리 진세키고겐정장(군수)은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민간단체들과 협력한 것이 큰 효과를 거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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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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