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순환 경쟁시대

말뿐인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 커지는 현장 혼선

2023-09-11 11:06:30 게재

현실 무시한 재활용지정사업자제도 품목 확대, 실효성 의문 … 유럽연합은 플라스틱 용기에 적용, 첫단추부터 잘못

'탈플라스틱'을 위한 국제 사회 움직임이 커짐에 따라 기업 수출 경쟁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플라스틱세를 부과한데 이어, 2030년부터 EU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플라스틱 용기에 재생원료를 30% 이상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전망이다. 게다가 내년에는 유엔(UN) 플라스틱 국제협약까지 만들어진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부터 연 1만톤 이상 페트(PET) 원료를 생산하는 업체의 경우 의무적으로 재활용 원료를 3% 이상 사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의무화가 아니라며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가득 쌓인 재활용 플라스틱 쓰레기│6일 경기도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 반입·반출 작업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6일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재활용 원료 3% 이상 사용 의무 대상이 되는 업체는 2곳 밖에 없어 얼마나 플라스틱 사용 감축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게다가 해당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페널티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의무 못 지켰을 때 아무런 페널티 없어 = 지난 1월 개정된 '재활용지정사업자의 재활용 지침' 고시에 따라 '합성수지나 그 밖의 플라스틱 물질 제조업: 폐플라스틱 재활용 원료'도 재활용지정사업자에 해당한다. 재활용지정사업자제도는 상대적으로 유가성이 있고 재활용을 독려할 필요가 있는 업종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철스크랩 유리용기 등이 해당된다.

환경부가 지난 1월 '생산·소비·재활용 전 과정의 순환경제 전환'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플라스틱 생산 업체의 재생원료 사용을 2023년 3%로 의무화한다는 것도 재활용지정사업자에 플라스틱 물질 제조업을 넣었다는 의미다.

순환경제는 종전 선형경제('자원채취-대량생산-폐기'로 끝나는 방식)와 달리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버려지는 자원의 순환망을 구축해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친환경 경제 체계다. 나아가 사용된 자원을 경제 체계 안에서 계속 이용하는 지속가능한 경제체계를 추구한다.

문제는 플라스틱 물질 제조업의 경우 철스크랩이나 유리용기 등과는 생산 및 유통 구조 등이 다른 특성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8일 장용철 충남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원료 물질을 만든 다음에 플라스틱 제품으로 나오고 그 제품이 최종적인 용기 형태로 판매되는 몇 단계에 걸친 구조를 가진다"라며 "이런 특성을 고려해서 해외에서는 '엔드 유저'(구축된 시스템을 사용해 마지막으로 제품을 만드는 사용자)에게 의무적으로 재활용 원료를 사용하도록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8일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7월 엔드 유저에게도 얼마만큼의 재활용 원료를 사용하도록 하는 게 적합한지 등의 내용을 포함한 '플라스틱 재활용지정사업자 제도개선 연구' 용역이 시작됐다"며 "이 용역은 빨라야 12월에 끝난다"고 말했다.

게다가 제도는 시행됐지만 재생 원료 투입과 산출 비율을 검증할 방법도 없다. 최종 사용자는 포장지나 용기에 재생 원료 사용 비율을 표시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소비자들이 해당 내용을 알 길이 없는 셈이다.

또 다른 환경부 관계자는 8일 "제도 도입 초기 단계에서 바로 업체에게 강한 처벌을 주는 식의 집행을 할 수는 없다"며 "해외는 플라스틱 용기에 의무를 주는 방식이고 여러 고려 사항이 있는 만큼 다양한 변수들을 철저히 분석해 적용 시 문제가 없도록 올해 안에 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2025년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서울시가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 종합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7일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일회용컵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컵보증금제 등 속도 안나는 대책들 = 글로벌 시장조사통계기관인 '슈타티스타'의 2021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이 1950년 150만톤에서 2020년 3억6700만톤으로 약 245배 증가했다. 플라스틱은 저렴하고 뛰어난 물성 때문에 개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사용량이 급증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플라스틱 사용량이 많은 국가다. 유럽플라스틱제조자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플라스틱 원료 사용량은 132kg(2015년)이다. 벨기에(170kg) 대만(141kg) 등과 함께 다소비 국가로 꼽힌다. 게다가 한국환경연구원에 따르면 2030년 우리나라 플라스틱 수요는 846만톤이 될 전망이다.

지난 5일 유엔환경총회가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간 협상위원회(INC)와 함께 발표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초안'에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자는 내용이 포함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난 2차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줄일 방법을 두고 '생산 자체를 줄이자' '재활용을 포함한 폐기물 처리에 중점을 두자' 등 의견 차이가 팽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전 세계적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친 규칙을 만드는 협약이다. 2022년 11월 우루과이에서 첫 회의가 시작됐다. 5차례에 걸친 정부간 협상위원회를 통해 2024년 말 체결될 예정이다. 제2차 회의까지 마친 상태로 마지막 제5차 회의는 한국에서 열린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쏠릴 국제적 관심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최초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도입하는 등 탈플라스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하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제 역시 제때 닻을 올리지 못한 상황이다. 본디 법적으로 지난해 6월 시행돼야 했지만 6개월 유예됐다.

지난해 12월 세종과 제주에서만 시범 실시, 본디 취지대로 전국 단위 시행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감사원에서도 공익 감사 결과에 따라 전국 단위로 보증금제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제주도의 경우 보증금제 적용 대상을 늘리기 위해 환경부에 조례 제정 근거(관련 시행령 개정)를 만들어 달라는 의견을 내놓은 상태다.

7일 환경부 관계자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규모 실시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해 4계절 운영 평가를 하기로 했다"며 "제주의 경우 제도가 잘 안착되는 상황이지만 시행령 개정의 경우 적용 규모가 달라지는 문제라 전국 단위 시행과는 또다른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제3자 반환 문제 △무인회수기 확대 △소비자 부정반환 시 대응책 집행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상당수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카페에서 음료를 일회용컵에 담아 구매할 경우 자원순환보증금 300원을 내고 컵을 반환할 때 보증금을 다시 돌려받는 제도다. 단순히 사용한 일회용컵을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머물지 않고 다회용컵 사용이 활성화하도록 유도하는 게 목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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