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금융거래 제한은 "차별행위"

2023-10-16 11:14:08 게재

대법, 우체국 패소 확정

위자료 20만원씩 지급

한정후견을 받는 지적 장애인의 금융거래를 제한한 우체국의 조치는 차별행위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 등 지적 장애인 18명이 국가(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낸 차별행위 중지 등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A씨 등은 2018년 1월 가정법원에서 한정후견개시 심판을 받았다. 한정후견은 질병이나 장애, 노령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법률 행위 등 후견 사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당시 법원은 지적 장애인이 금융 거래를 할 때 인출일 전부터 30일을 합산해 거래 금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한정후견인의 동의를 받도록 제한했다. 또 300만원이 넘으면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우체국 은행은 이 범위를 초과해 지적 장애인이 돈을 인출하려면 반드시 통장과 인감을 지참해 은행 창구에서만 거래할 수 있게 했다. 1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 거래는 한정후견인 동의서가 있어도 혼자 거래할 수 없고 한정후견인과 함께 방문해 은행창구에서만 거래하도록 제한했다.

A씨 등은 이 같은 행위가 차별이라며 2018년 11월 비대면 거래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위자료로 각 5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우정사업본부의 제한 조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라고 보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1심 법원은 "30일 합산 100만원 이상 거래의 경우 '동의서' 제시에 의한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한정후견인과 동행을 요구하는 행위를 중지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우체국 은행이 원고 1인당 50만원씩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덧붙였다.

2심에서도 차별 중지 명령은 유지됐다. 다만 우체국 은행이 2020년 6월부터 내부 지침을 수정해 차별을 멈춘 점을 고려해 배상금 액수를 1인당 20만원으로 줄였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며 국가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한정후견인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나 제한이 필요한지는 후견 사건을 담당하는 가정법원이 심리 절차를 거쳐 판단하는 것"이라며 "피한정후견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우정사업본부 등이 임의로 제한하는 것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2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민법상 성년후견제도는 의사결정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도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필요한 한도에서만 능력을 제한하는 취지라고 판시했다. 국가기관은 법령을 준수해야할 책무가 있고 장애인 차별을 방지할 더 큰 책무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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