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화산폭발이 역사와 기후를 바꾼다

2023-11-24 12:04:11 게재

백두산 탐보라화산 라키산 대분화 … 화산재·연무로 여름 사라지고 '대기근'

남준기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운영위원장

"세종 2년(1420년) 5월, 천지의 물이 끓더니 붉게 변했다. 소떼가 크게 울부짖었고 이러한 현상은 열흘 이상 지속됐다. … 검은 공기는 인근 지역으로 가득 퍼졌다."

"숙종 28년(1702년) 6월, 한낮에 함경도 일대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린내가 나는 황적색 불꽃이 날아왔다. … 눈송이처럼 날아다니던 재는 1촌(약 3㎝) 두께로 쌓였고, 재는 마치 나뭇조각 같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백두산 분화에 관한 기록이다.

백두산은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200만~300만년 전 제4기 분출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두산이 융기하면서 고아무르강에 연결돼 있었던 압록강의 흐름이 서쪽으로 바뀌었고 그때 '열목어' '곤들메기' '자치' 등 고아무르강 수계의 냉수성 어종들이 서해안 수계로 넘어왔다는 가설도 있다.

한반도의 열목어는 빙하기와 간빙기, 백두산 폭발, 하천쟁탈과 유로변경 등 수백만년에 걸친 지질변화를 간직한 '살아있는 생물화석'인 셈이다.

오십령에서 본 백두산 칼데라. 946년 백두산 분화(946 eruption of Paektu Mountain)는 화산폭발지수 7에 달하는 역사시대 이후 가장 강력한 화산분화였다. 사진 남준기


◆1000년 전 백두산 폭발, 탐보라화산 2배 규모 = 최근의 지질학 연구에 따르면 9세기와 10세기에 백두산의 대규모 분화가 있었다. 946년의 대폭발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에 발생했다. 946년 백두산 분화(946 eruption of Paektu Mountain)는 화산폭발지수 7에 달하는 역사시대 이후 가장 강력한 화산분화였다.

날짜는 946년 10월에서 12월 사이로 추정된다. 화산재와 화산가스 기둥이 대기 상층으로 25㎞ 이상 치솟았고 100㎦ 이상의 화산재를 배출했을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 대분화는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 5~10㎝ 두께의 백두산-도마코마이(B-Tm) 화산재 지층을 증거로 남겼다. 그린란드 빙하 속에서 백두산에서 날아온 화산재 유리조각이 발견되기도 했다.

백두산 대분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화산폭발인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폭발의 2배 규모로 추정된다. 탐보라 화산은 약 28메가톤의 황을 분출했는데 백두산은 약 45메가톤의 황을 분출했다. 고려사(高麗史)는 고려 정종 원년(946년)에 '이 해 천고(天鼓)가 울리므로 사면령을 내렸다'고 기록한다. 같은 시기 일본의 역사서인 흥복사연대기(興福寺年代記)에서는 천경 9년(946년) 11월 3일 '천경의 밤에 하얀 화산재가 눈과 같이 내렸다'고 기록한다.

백두산은 서기 900년 이후에만 14번 가량 분화한 활화산이다. 폭발 규모가 가장 컸던 것은 946~947년의 분출이었고, 가장 최근의 분화 기록은 1903년이다.

화산폭발지수(Volcanic Explosivity Index·VEI)는 화산폭발의 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화산 폭발의 지속시간, 분출 높이, 분출물의 양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1등급에서 8등급까지 등급이 올라갈 때마다 분출물의 양이 10배 늘어난다. 분출물의 양이 약 1만㎥면 1등급, 약 10만㎥면 2등급 분화로 분류된다.

VEI 7등급으로 기록된 946~947년 백두산 화산폭발은 VEI 6등급인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분출과 종종 비교된다.

◆지구종말론으로 번진 화산폭발 = 1815년 4월 5일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다. 최근 인류의 기억에서 최대 규모였다. 폭발 소리가 2500㎞ 떨어진 곳에서도 들렸고 화산재에 뒤덮인 인도네시아 지역은 이틀 동안 밤이 계속됐다.

화산재가 지구 상공에 올라가 태양빛을 차단했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수많은 재난이 발생했다. 1816년은 여름이 사라진 때였다. 여름에도 서리가 내렸고 심지어 8월에 눈이 내리고 경작지가 얼었다.

미국 북동부 지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영국의 여름 3개월간 평균기온은 소빙하기에 가장 추웠던 해보다 낮은 온도였다. 식량 가격이 뛰면서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1818년과 1819년 유럽 대륙의 대규모 금융불황까지 불러왔다.

아일랜드에서는 장티푸스가 창궐해 2년 동안 5만명이 사망했다. 화산폭발 이후 심화된 미국 이주 열풍으로 미국 인구는 1800년 530만명에서 1820년 960만명으로 거의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세계를 뒤흔들었던 탐보라 화산은 여전히 화산활동을 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폭발은 1967년에 있었다.

탐보라 화산폭발의 영향을 자세히 기록한 사람이 있다. 루크 하워드(1772~1864)라는 영국 과학자다. 그는 구름의 종류를 구분하고 10가지 이름을 최초로 붙인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런던에 살면서 기상현상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는 온도계를 가지고 외곽으로 나가보니 도시 안쪽보다 온도가 낮다는 걸 발견했다. '도시 열섬(히트 아일랜드) 현상'을 최초로 발견했다. 탐보라 화산폭발 당시 그의 기록을 보자.

"1816년 2월 9~10일 엄청난 추위가 왔고 강력한 북동풍이 불었다. 1816년 여름에는 잉글랜드 북부 산꼭대기에 눈이 내렸다. 1816년 런던의 낮시간 평균기온이 섭씨 3.3도를 기록했다(1807~1815년의 평균은 10도). 1816년 여름에 스코틀랜드 지역에 눈이 쌓여 깊이가 1.5m나 되었다."

당시 영국의 시인 바이런(1788~1824)은 "대낮에도 어둡기 짝이 없거든. 점심 때 벌써 닭들은 밤이 온 줄 알고 자러 들어가더구나. 대낮에도 한밤중처럼 촛불을 밝혀야 한다네"라고 썼다.

1917년 유럽에서 기록된 여러 기상현상을 보면 함부르크 암스테르담에서 허리케인이 발생했다. 프랑스 전역에 우박을 동반한 폭우가 있었다. 스위스에선 큰 홍수가 났다. 1816년에서 1817년 사이 유럽 전역 들판에서 곡물 생산이 75% 이상 급감했다.

1817년 겨울에는 굶주린 스위스를 위해 곡물을 수출한다는 소문 때문에 독일 여러 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곡물 생산이 급감하니 가격이 3배까지 올라갔다. 기술자의 일주일 임금보다 빵 1파운드 값이 더 비싼 사태가 벌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볼로냐의 예언'이 떠돌았다. 1816년 7월 18일 지구종말이 오고 태양이 사라진다는 예언이었다. 벨기에 한 교회에서는 15일 동안 회개기도를 했다. 7월 18일 전 폭풍우와 함께 천둥이 쳤다. 군부대 행진 나팔소리를 최후의 심판 나팔소리로 오해한 주민들 3/4이 길거리로 나와 무릎 꿇고 기도를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한파 속에 북극해가 녹아내렸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린 이유는 화산재가 북극해에 떨어져 하얀 눈 위에 검정색 분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산재가 태양빛을 흡수해 북극해가 녹은 것이다.

◆벤자민 플랭클린이 쓴 최초의 논문 = 화산폭발과 기상이변의 상관관계에 대한 최초의 논문은 벤자민 플랭클린(1706~1790)이 썼다.

1783년 6월 8일 아이슬란드 라키산의 지하수가 마그마에 닿아 수증기 폭발이 발생했다. 화산폭발지수 6에 달하는 분화였다. 130개의 화구가 생겼고 8개월 동안 12㎦의 용암이 분출해 사상 최대 용암 분출을 기록했다.

라키 화산 폭발로 영국 프랑스,독일 등 남부 유럽을 제외한 유럽 지역에서 7월 기온이 3℃ 이상 떨어졌다. 1784~1786년 평균기온이 1.5℃ 이상 낮아졌다. 화산가스가 퍼져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벤자민 플랭클린은 자세한 관찰과 각종 자료를 분석해 '기상학적 상상력과 추측'이라는 논문을 썼다. 그는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가스가 저온 현상의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안개는 매우 건조하다. 물이 증발한 습한 안개는 햇빛에 바로 가시는 데 비해 이 안개는 그렇지 않다. 볼록렌즈를 통해 모아진 빛으로 종이에 불도 붙이지 못한다. 1773년 6월 말 심한 유황 냄새가 대기 중에 스며 집밖으로 몇시간만 나갔다 들어온 사람도 눈이 쓰리고 목이 갑갑한 증상을 호소했다."

그는 "멀리서 폭발한 라키라는 화산이 있는데 그쪽에서 폭발한 화산 때문에 이쪽의 기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썼다. 화산폭발이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첫번째 논문이었다.

라키화산 폭발로 1만여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분출된 대량의 아황산가스 때문에 대기권에 태양빛 차폐막이 형성돼 핵겨울과 유사한 화산 겨울을 만들어냈다. 1783년 이후 몇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이상기후가 발생했다. 유럽 전역에서 기근이 일어나 유럽 인구의 약 10% 가량이 굶어죽었다. 이로 인한 민심 이반이 폭발해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