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핵·미사일 위협과 '즉강끝' 응징 악순환

2023-12-20 11:36:02 게재
북한이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8형'을 발사하고 한미 양국이 내년도 연합군사훈련에 '핵작전 시나리오'를 포함시키기로 하는 등 한반도 위기지수가 끝없이 치솟고 있다. 한미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공조를 강화하며 강력히 대응하면 할수록 북한은 도발수위를 더 높이는 '강대강' 맞대결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참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워싱톤이 우리를 상대로 잘못된 결심을 내릴 때에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를 뚜렷이 보여준 계기로 되였다"며 "적들이 계속 잘못된 선택을 이어갈 때에는 분명코 보다 진화되고 보다 위협적인 방식을 택하여 더더욱 공세적인 행동으로 강력하게 맞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주장했다. 북한은 예전의 '시험발사' 표현에서 '발사훈련'으로 바꿔 '화성포-18형'의 신속한 실전 배치 가능성을 내비쳤다.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로 정확해진 '눈'을 확보한 상태에서 '주먹'의 강도를 키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통신은 한미가 지난 15일 핵협의그룹(NCG) 2차회의에서 '핵작전 시나리오'를 내년부터 한미연합훈련에 포함하기로 하고 미 핵추진 잠수함 미주리호가 17일 부산항에 입항한데 대한 "강력한 행동적 경고"라고 도발을 합리화했다.

군사력 대결수위 '치킨게임' 양상으로 갈수록 가팔라져

윤석열 대통령은 북 미사일 발사 직후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즉시, 압도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는 한미일 3국이 19일 부로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체계를 정상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보정보는 북한 미사일이 발사된 직후 △발사지점 △비행방향과 비행특성 △예상 탄착지점 등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한미일 3자훈련을 정례화하는 계획을 공동으로 수립했다고 밝혀 일본의 한반도문제 개입 우려가 더 커졌다.

미 최정예 특수전부대인 그린베레와 네이비실 요원들이 최근 한국에 입국해 한미연합특수작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힌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합참이 공개한 훈련 영상을 보면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요원들이 건물 내부에 침투해 사람 표적을 향해 사격하는 것으로, 김정은 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를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작전'에 대비한 훈련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는 유엔군사령부 경비요원들이 북한의 최전방감시초소(GP) 중무장과 JSA 비무장화 폐기에 대응해 다시 권총을 휴대하기 시작한 것도 한반도 대결양상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신원식 국방장관은 수시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라'고 '즉강끝' 응징을 강조하며 대북 적대감을 고취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안전판으로 일컬어져 온 '9·19 남북군사합의'가 효력 정지된 상황에서 양쪽의 군사력 대결수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상대를 억눌러 압도하려는 '치킨게임(겁쟁이게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돌파구 없는 군사적 대치가 갈수록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태효 1차장 건재 … 땜질인사에 그친 외교안보라인 교체

윤 대통령은 19일 공석이던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조태용 안보실장을,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조태열 전 주유엔 대사를 지명하는 등 외교안보라인을 교체했다. 국정원의 극심한 내부알력 표출과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에 따른 문책 성격이 짙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외교안보라인의 핵심실세로 꼽히는 김태효 안보실 제1차장이 건재해 돌려막기 땜질인사 이상의 획기적 정책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반도를 위태롭게 몰아가는 '대화'가 빠진 대북강경책과 부산엑스포 유치 29 대 119 참패에서 보듯 세계적인 흐름과 동떨어진 '친미편향외교'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 과도하게 밀착해 한미일 군사공조를 강조하면서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끼치는 주변 강국들을 멀어지게 하거나 이미 적대관계로 돌아서게 한 '뺄셈외교'의 폐해가 곳곳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근본적인 정책변화가 없다면 내년에도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는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