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업살인법 '기업의 과실치사도 처벌'

2015-04-17 10:48:45 게재

1987년 엔터프라이즈호 193명 사망계기로 도입 … 호주도 2003년 도입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 전회장 일가와 측근 40여명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직접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절반이상이 집행유예를 받거나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기업살인법이 도입된 영국에서 같은 사고가 벌어졌다면 상황은 달라졌다.

기업살인법이란 기업이 업무에 있어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기업에게 바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을 말한다. 기업을 구속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최고 경영자를 구속해 엄히 처벌하고, 기업에는 상한선조차 없는 징벌적 벌금을 부과한다. 이에 따라 세월호로 부터 이득을 챙긴 유 전 회장 일가는 엄한 처벌을 받고, 징벌적 벌금을 부과받았을 것이다.

1987년 3월 6일 침몰, 193명의 사망자를 낸 엔터프라이즈호의 모습. 사진출처 '더 선(SUN)'


영국의 경우 1987년 엔터프라이즈호가 전복돼 193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기업살인죄가 도입됐다. 이 여객선은 부갑판장이 잠들어 뱃머리 문을 닫지 않은 채 출발해 배가 전복됐다. 사건 조사 결과 관리감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선원들은 안전 대책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항구에서 배를 급하기 출발시키면서 안전 규칙 또한 전면 무시됐다. 경영자가 유람선이 항해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표준운영지침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 또한 밝혀졌지만 수사 과정에서 여객선 회사측은 배의 선장과 선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결국 고위관리자가 관련된 점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판단에 기업 자체에 책임을 묻지 못했다. 기업의 안일한 안전의식과 이윤제일주의가 밝혀졌지만 입법의 미비로 처벌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건 발생의 추이와 재판 결과들을 보면 마치 세월호 참사와 판박이나 다름없다. 결국 영국은 사건 이후 10년간 기업의 과실치사를 별도의 입법을 통해 처벌해야 한다는 기업살인법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10여 년간의 유족들의 운동, 사회적 논의와 법적 토론을 거쳐 수년간의 논의와 수정을 거쳐 2008년 마침내 기업살인법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기업은 물론 정부기관에도 적용하도록 했다.

통상 연간 매출액의 2.5~10% 벌금을 내게 되지만, 심각한 위반으로 큰 사고를 가져온다면 상한선조차 없는 징벌적 벌금이 부과된다.

호주의 경우 2003년 일부 지역에서 기업살인법이 도입됐다.

사용자의 부작위(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해야 했음에도 하지 않을 경우)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하면 산업살인죄로 기소된다.

기업은 최고 125만 호주달러, 개인은 25만 호주달러의 벌금을 부과받거나 25년 형을 받는다.

캐나다 또한 2003년 11월 기업살인법(단체의 형사책임에 대한 형법 개정안)을 제정했다. 이 법 또한 기업의 경영자나 관리자의 부주의로 산재사고가 발생한 경우 기업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 제정 전에는 경영자 측이 '범죄의 의도'를 가졌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범죄가 됐다.

지난해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와 민주노총이 주최로 한 심포지엄에서 호주 노동안전전문가, 영국 산업재해전문가들이 토론자로 참석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대기업의 안전규제를 약화시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또한 재해 발생시 기업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변 소속 강문대 변호사는 "기업살인법에 기업의 최고책임자는 물론 기업자체에 막대한 벌금, 과태료를 비롯 영업정지와 기업해체 수준까지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재해가 주로 수익 극대화를 위해 위험을 감내하려는 자들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재해 발생시 부담해야 하는 대가가 위험을 감내하고 얻은 수익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인식시켜줘야 한다"며 "최고 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현장의 모든 정책이 진행되는 만큼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책임자에게 엄중한 살인죄를 물어야 한다"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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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진 기자 la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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