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에 멍드는 금융투자자 | ①힘겨운 법적 다툼

ELS 피해소송 13건, 수년간 법정공방

2015-06-17 11:18:33 게재

항소심서 투자자들 1건도 승소 못해 … 최근 대법원 승소 판결로 방향 전환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한 피해자들이 5년째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피해 입증이 쉽지 않은 복잡한 금융상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이 ELS상품을 운용한 증권사에 대해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했다며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선고함에 따라 수년간의 법정공방이 '투자자보호'로 귀결될 전망이다.


17일 내일신문이 전국 법원에 계류 중인 ELS소송 사건을 분석한 결과 13건 중 2건이 최근 대법원에서 투자자 승소 취지 판결을 받으면서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며 중단됐던 유사 사건의 하급심 재판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서울고법 민사 14부는 장 모씨 등 8명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상환금 소송의 변론기일을 오는 30일 정했다. 해당 사건은 2013년 12월 재판이 중단됐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유사 사건의 선고 결과를 보고 재판을 다시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준 '195회 대우증권 공모 ELS' 사건과 동일한 건이어서 대법원과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고법 민사 33부는 ELS 투자로 손해를 입은 손 모씨 등 2명이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과 민 모씨 등 64명이 메릴린치와 RBC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사건의 심리를 조만간 재개할 예정이다.

재판부 관계자는 "유사사건의 대법원 심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양측 변호인의 의견을 반영해 재판을 중단했다"며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만큼 가능한 빨리 재판을 속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 Blue Star 사모 파생 상품투자신탁 3호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은 ㅇ신용협동조합과 ㄱ새마을금고가 각각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은 지난 2013년 11월 원·피고 양측의 조정이 성립돼 종결됐다. 양측은 조정을 통해 ELS사건의 대법원 판결 결과에 따르기로 합의한 만큼 사실상 투자자들의 승소로 결론이 날 예정이다.

투자자들 대부분 패소했다 '기사회생' = 13건의 ELS 민사소송은 쟁점이 유사하지만 1심에서 판결이 엇갈렸다. 선고된 10건 중 투자자 승소는 4건이다. 투자자와 증권사의 승소건수가 4대 6으로 결과가 비슷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투자자들이 전패했다. 2심 선고 사건 5건 중 투자자들이 이긴 소송은 단 한건도 없다. 1심에서 승소했던 2건도 항소심에서 모두 결과가 뒤집혔다. 그 중 2건은 대법원에서 투자자 승소취지로 파기환송됐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은 3건이다.

3건은 모두 외국계 증권사가 피고인 사건들이다. '136회 신영증권 ELS' 와 '현대증권 사모주가연계증권'은 BNP파리바, '한국투자증권 부자아빠 주가연계증권'은 도이치뱅크를 상대로 투자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3건 중 '현대증권 사모주가연계증권'사건은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3부가 심리를 맡고 있어 투자자 승소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해당 사건들의 증권사측 소송대리를 맡고 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달 대법원이 승소취지의 판결을 한 이후 보충답변서를 잇따라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자와 증권사 '이해상충'땐 투자자보호 = ELS소송은 지난 2010년 처음 제기됐으며 5년간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재판부마다 투자자들의 승소와 패소가 엇갈린 것은 증권사들이 ELS상품을 운용하면서 기초자산이 되는 주식을 중도상환일이나 만기상환일에 집중 매도한 것에 대한 판단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투자자 피해를 인정한 재판부는 "주가를 만기상환조건의 기준가격보다 낮게 형성시켜 만기상환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도록 했다"며 자본시장법의 '시세를 변동시키는 시세조종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증권사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는 위험회피를 위한 불가피한 매도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델타헤지는 ELS발행의 전제조건으로 보편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헤지방법"이라며 "단지 거래수량이 많다거나 매매시기가 집중돼 있다는 점만으로 델타헤지로 인한 주식 매매가 인위적인 시장조작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5월 14일 대법원은 증권사가 ELS상품을 운용하면서 위험을 회피하는 기법인 델타헤지로 인한 집중 매도에 대해 "증권사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투자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ELS상품이 투자자와 증권사의 이해가 상충되는 조건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ELS의 중도상환조건은 법률행위 효력의 발생을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에 의존케 하는 정지조건이고 정지조건이 성취되는 경우 증권사는 투자자에게 약정 수익금을 더한 중도상환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며 "증권사는 정지조건의 성취 여부에 따라 투자자와 이해관계가 상충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법질서의 기본원리인 '신의성실 원칙'를 투자자 승소의 판단 근거로 삼았다.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상대방의 이익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해상충이 불가피한 경우에 투자자가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며 "정당한 사유없이 투자자의 이익을 해하면서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증권사의 대량매도 주문으로 인해 종가가 낮게 결정됐고 ELS의 중도상환조건 성취가 무산됐다"며 "이러한 행위는 증권사가 투자자 보호 의무를 게을리한 것으로 신의성실에 반해 중도상환조건 성취를 방해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주가연계증권(ELS:Equity Linked Securities) = 통상 투자금의 대부분을 채권투자 등으로 원금보장이 가능하도록 설정한 후 나머지 소액으로 코스피 200 같은 주가지수(주로 코스피200)나 개별종목에 투자한다. 이때 주가지수 옵션은 상승형과 하락형 등으로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 옵션투자에는 실패하더라도 채권투자에서는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구조다. 사전에 정한 2~3개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때까지 계약 시점보다 40~50%가량 떨어지지 않으면 약속된 수익을 지급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2003년 증권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상품화했다. 장외파생금융상품업 겸영 인가를 받은 증권회사만 발행할 수 있다. 만기는 3개월∼2년으로 1년 이하의 단기가 주종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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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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