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에 멍드는 금융투자자 | ② 인위적 시세 개입

ELS 시세조정 증권사 직원 첫 유죄

2015-06-19 11:09:09 게재

장마감 8분 남기고 8만7천주 매도주문 … "투자자들 조건성취 방해"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해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은 해당 상품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다른 보완수단을 갖고 있어 주가하락에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ELS를 운용하는 증권회사의 트레이더가 시세를 조정해 해당 상품의 수익 발생을 인위적으로 막은 사건이 다수 발생했고 법원이 처음으로 트레이더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19일 법원에 따르면 시세조정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기소된 M증권 전직 트레이더 김 모씨에게 벌금 1000만원의 유죄가 선고됐다. ELS시세조정으로는 첫 유죄 판결이다.

중간평가일에 매도폭탄, 중도상환 막아 = 김씨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M증권의 과장으로 재직하며 헤지거래 담당 트레이더로 일했다. 그는 2008년 포스코와 SK에너지 주식회사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를 운용했다.

해당 상품은 포스코 주식은 45만2000원으로, SK에너지 주식의 경우 12만원을 최초 기준가격으로 결정했다. 발행일로부터 6개월마다 중간평가일 주식 종가가 최초 기준가격의 일정비율 이상이면 미리 정한 원금과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하지만 상환조건이 한번도 성취되지 않고 최종 만기가 도래할 경우, 한 종목이 한번이라도 최초 기준가격보다 50%를 초과해 하락한 적이 있으면 원금손실을 입을 수 있게 설계됐다.

김씨는 2009년 4월 15일 2차 중간평가일에 중도상환조건이 성취되면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24%의 수익을 돌려줘야 했다.

당시 SK에너지 주가는 2008년 7월 이후 금융위기로 하락세여서 투자자에게 원금과 수익을 상환하면 19억 1500만원을 손실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김씨는 해당 상품 외에 다른 ELS 운용부문에서 약 83억8900만원의 누적손실이 발생한 상태였다.

그는 4월 15일 SK에너지 주식을 오후 2시30분부터 2시50분까지 62회에 걸쳐 6만500주 매도했고 특히 종가가 결정되는 오후 2시50분부터 3시까지 동시호가에 매도 물량을 저가로 쏟아냈다.

투자자 민원제기하자 돈주고 합의 = 김씨는 오후 2시52분부터 2시59분 55초까지 7분55초 동안 총 5회에 걸쳐 8만7000주를 예상체결가격보다 저가로 매도주문했다. 2시59분48초부터 2초, 5초 간격으로 각각 1만주씩 3만주를 매도호가 9만5800원에 내놨다. 당시 종가가 9만6000원이면 조건이 달성돼 투자자들이 원금과 수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김씨의 매도주문으로 이날 SK에너지의 종가는 9만5800원으로 결정됐다.

김씨의 대량 매도로 ELS중도상환이 무산되자 증권사로 항의전화가 오는 등 민원이 발생했다. 증권사 내부에서도 "부도덕한 매매를 했다"는 비난이 이어졌고 대책 수립이 논의됐다.

급기야 투자자 중 한명인 A씨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고 증권사는 2차 중도상환조건이 충족됐을 경우 지급할 원금과 24%의 수익을 합한 금액 1억24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했다. 대신 민원을 취하해달라고 요청했다. 형식적으로는 A씨가 ELS를 중도해지하는 것으로 끝났다. 증권사 간부들은 A씨가 받은 1억2400만원 중 중도해지금을 뺀 차액을 각자 출연해 지급했다.

추후 조건성취, 투자자 피해 없어도 유죄 인정 = 하지만 해당 ELS상품은 3차 중간평가일인 2009년 10월 기초자산의 주가가 조건성취가격을 상회해 수익률 36%에 조기상환됐다. 손실은 고스란히 증권사 몫으로 돌아갔다. 김씨는 ELS발행가액 73억2800만원과 조기상환가액 99억6600만원의 차액 26억3800만원을 손실처리했다. 주가 상승으로 투자자들의 직접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피해 발생 유무와 무관하게 김씨의 시세조정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김씨는 재판과정에서 ELS에 연계된 주식의 급격한 변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델타헤지'의 방법으로 주식을 매도한 것이라며 인위적으로 시세를 고정시킬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델타헤지'에 트레이더의 재량권이 부여될 수 있고 따라서 인위적인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델타헤지는 기업의 리스크 관리 기법일뿐이고 델타헤지 방법이 갖는 이론과 현실의 격차로 인해 델타헤지 방법 자체가 트레이더에게 일정한 재량을 부여하고 있다"며 "김씨 역시 시스템이 보여주는 델타값을 참조했을뿐 실제로는 현실의 다양한 변수와 시장상황을 고려해 전문적 지식에 기초해 매도·매수 여부, 시기, 수량 등에서 일정한 재량을 갖고 헤지 거래를 해온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인정된 사실을 종합하면 김씨가 주가를 ELS조건성취가격인 9만6000원 미만으로 고정시킬 목적으로 종가 단일가매매 시간대에 예상체결가격보다 저가로 집중적인 매도주문을 체결함으로서 주식의 시세를 고정시켰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중도상환일이나 만기상환일에 상환조건은 충족됐는데 변동성이 떨어져서 충분히 상환자금이 마련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증권사가 손실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서 불공정거래행위가 이뤄진다"며 "그렇지 않더라도 만기일에 종가가 기준가보다 낮아지면 상환금 부채규모가 줄어서 순이익이 크게 늘어나므로 종가를 조작할 유인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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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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