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집어삼킨 '노동개혁' ①

노동4법 국회통과 아예 물 건너갔다

2016-11-17 10:43:45 게재

재벌과 뒷거래 의혹으로 정당성 잃어 … 고용부 "필요한 법도 폐기될까 걱정"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명분으로 추진해온 '노동개혁'이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노동자로 가득찬 서울광장│12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전국노동자대회 사전집회에서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퇴진·하야' 상황으로까지 내몰린 박 대통령이 더 이상 노동개혁을 밀어붙일 힘이 없기 때문이다. 파견법 등 노동4법에 대한 국회 법안심사가 21일 예정돼 있지만, 고용노동부조차 법안통과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정부와 재벌의 뒷거래 의혹이 제기되면서 노동개혁의 정당성마저 흔들리는 분위기다.

실제 박 대통령은 재벌 대기업들이 미르재단에 500억원 출연을 약속한 다음날인 지난해 10월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활성화법, 노동개혁 5법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호소했다.

마찬가지로 K스포츠재단에 재벌 대기업들이 269억원 출연을 약속한 다음날인 올해 1월 13일 대국민 담화에서 "노동5법 중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돌리고 파견법을 비롯한 4법만이라도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언급한 시점이 재벌들과의 '뒷거래'를 의심하기 충분한 상황인 것이다.

최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벌 대기업 등의 1400억원 기부금으로 설립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청년희망재단'에도 최순실씨 최측근인 차은택씨가 개입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재벌들이 입금을 하면 대통령이 운을 띄운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노동5법은 35세 이상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까지 연장하는 기간제법, 고소득 전문직·55세 이상 고령 근로자와 금형·용접 등 뿌리산업으로 파견을 확대하는 파견법, 휴일근로 8시간까지 가산수당 중복할인을 없애 기존 100%에서 50%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구직급여 수급을 위한 고용보험 가입기간을 확대하는 고용보험법, 출퇴근재해를 보상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이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노동5법의 핵심사항이 경영단체의 민원을 수용한 '청부입법'으로 보고 있다. 2014년 '규제기요틴(단두대) 민관합동회의 과제접수' 목록을 보면 기간제법과 파견법 개정안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요구사항이고 근로기준법은 중견기업연합회 민원사항이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아니더라도 사실 노동개혁은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면서 정부의 일방통행이 국회에서 통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여당의원 6명에 야당의원 10명으로 야당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와 여당은 20대 국회가 개원하자 노동4법을 '1호 법안'으로 제출해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터진 후인 지난 4일 국회는 노동4법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노동4법 중 하나인 고용보험법 개정을 전제로 편성했던 구직급여사업 3262억원과 조기재취업수당사업 380억원을 감액했고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를 위한 컨설팅 사업인 일터혁신 컨설팅지원사업(17억원) 예산도 삭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국정의 중심이 국회로 옮겨온 만큼 정부의 노동개혁은 사실상 물건너갔다"고 평가했다.

고용부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정형우 고용부 대변인은 "법안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금의 상황과 무관하게 법안심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고용부 관계자들은 "이번 파동으로 쟁점법안이 아닌 출퇴근 사고시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산재보험법이나 원청의 책임을 강조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 꼭 필요한 법률안도 함께 폐기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집어삼킨 '노동개혁'' 연재기사]
① 노동4법 국회통과 아예 물 건너갔다 2016-11-17
② 성과연봉제 도입도 '제동' 걸렸다2016-11-18
③ 노조 스스로 못 바꾸면 개혁대상 될 것 2016-11-22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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