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리포트 │공약 재원은 어떻게 하나

돈먹는 '선심성 공약' 남발, 제어방법 없어

2017-02-07 11:28:27 게재

공직선거법, 공약대차대조표 강제 안해

"선거 한달전 금액·조달방법 제시해야"

국가 채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선심성 복지, SOC(사회간접자본) 공약이 속속 나올 기세다. 선거 국면이 치열해질수록 표를 확보하기 위한 '묻지마식 공약'이 판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국가 예산을 대규모로 써야 하는 공약을 따져볼 만한 장치가 제도적으로 거의 전무한 상태다. 공약 자체를 제출하는 시점도 선거에 임박해 이뤄지고 있다.

선심성 대선공약, 국회 검증 절실 │선심성 공약에 대한 사전, 사후 검증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2일 오전 국회 의장실에서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서명식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예결위원장이 서명을 마친 뒤 합의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7일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공직선거법 66조(선거공약서) 2항(선거공약서)은 '선거공약 및 이에 대한 추진계획을 각 사업의 목표, 우선순위, 이행절차, 이행기한, 재원조달방안을 게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있으나마나한 규정 = 실제 선거공약집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선거공약서에 공약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첨부토록 한 18대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선거공약서를 보면 허점 투성이다. 박 후보는 공약들을 몇 개의 분야로 나눠 목표를 제시하고는 우선순위에는 '최우선순위', 이행절차는 '관계법령 개정', 이행기간은 '임기내 실현'으로 적었다. 천편일률적이었다. 그러고는 16페이지의 공약집 맨 마지막에 한 장짜리 '공약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했다. 사업별이 아닌 21개 분야별로 뭉뚱그려 내놨다. 대선공약(93조6000억원)과 함께 새누리당 총선 공약(27조6000억원)까지 131조4000억원(지방교부세 10조2000억원 포함)에 완결할 수 있고 이를 예산절감과 세출구조조정, 세제개편, 복지행정 개혁, 기타 재정수입 증대 등으로 134조5000억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어르신에 월 20만원 정도를 받으실 수 있도록 하겠다'거나 '4대 중증 진료비 100% 국가 부담' '5세까지 맞춤형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실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소요 예산이나 산정방식은 제시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 40만개 확대 등 다양한 복지, SOC공약을 내놓고도 재원조달방식은 '국가재정, 지방세제 개혁'이나 '일반회계나 특별회계' 등 두루뭉술하고 하나마나한 대안을 제시했다. 모든 공약은 '최우선순위'였고 이행절차는 '관계법령 개정을 통한 진행', 이행기간은 '임기내'였다. 지방 공약은 더 허술했다.

공약서를 선거 보름전에 내놔 = 선거공약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시점도 문제다. 공직선거법에서는 선거공약 제출 기한을 '선거공약서 배부일 전일까지'로 했다. 방법은 '선관위에 서면으로 신고'하도록 했을 뿐이었다. 인터넷 게시는 '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이었다.

선관위 관계자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각각 12월 10일과 4일에 선거공약서를 선관위에 제출했다"고 확인했다. 공약 전체를 선거일(12월19일)보다 각각 9일, 15일전에 내놓은 셈이다.

내용도 허술하고 선거에 임박해서 나온 공약 제출은 유권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후보자의 편의에 따른 것으로 보일 정도다.

구체적인 공약 빨리 내놔야 = 전문가들은 빠르고 구체적인 공약을 내놔야 검증할 수 있고 유권자들이 투표에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소한 1달 정도 전에는 대권주자들의 공약이 공개되고 재원조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방식이 포함돼야 한다"면서 "사업별 재원 소요와 조달계획을 산식과 함께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그것만으로도 무리한 공약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에서 예산이 필요한 법안을 제출할 때 소요 예산을 산정해 같이 내는 법안비용추계제도를 활용해 재정 지출을 따지고 페이고(PAY-GO)제도와 같이 재정조달방식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 하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공약을 짜다보면 재정소요는 과소평가, 재정조달은 과대평가를 하게 된다"면서 "법안비용추계나 페이고 방식을 공약 대차대조표에 도입하면 공약을 짜는 데 상당히 견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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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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