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리포트│이번엔 정책 선거 해볼까

툭툭 던지는 한줄짜리 공약에 한숨만

2017-02-09 00:00:01 게재

정당·선관위도 '신속 정확한 정보' 부재

공약집엔 간단한 요약만 … 유권자 무시

10여명의 대선주자가 하루에 한 두 개씩 툭툭 공약을 던져놓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내놓다보니 벌써 한가득 쌓였다. 자세한 설명은 없다. 유세차 찾아간 시장에서, 학교에서, 공장에서 '이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들이민 것들이다. 논란이 되면 쏙 빠질 심산이 엿보인다. 실제로 일부 공약이 논란에 휩싸이자 선거캠프내 주요 인사가 대선주자와 다른 말을 하면서 물 타기를 시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다 보니 유권자 입장에선 헷갈릴 수밖에 없다.

선거 즈음에 가면 누가 어떤 공약을 냈는지 알기 어렵다. 이슈가 되는 몇몇 공약에 모든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잘못 알고 지인들과 토론하며 말다툼까지 경우도 부지기수다. 진실게임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들을 검색해봐도 속시원한 답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직장이나 학교, 집에서 정확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이 판을 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18대 대선이후 부정확한 공약논란으로 번진 게 '기초연금'이다. 박 대통령의 공약집엔 '노후 걱정 줄이기'라는 제목으로 "안정된 노후소득을 위해 국민기초연금을 도입하겠습니다"와 "모든 어르신이 월 20만원 정도를 받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는 문장만 들어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TV토론, 공약 현수막을 들이밀며 '모든 노인에 20만원씩 주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최대 20만원'을 지급한다는 뜻이라고 했고 대상자도 '소득하위 70%까지'로 풀이했다. 이 논쟁은 박 대통령 공약 파기 논쟁으로 이어지며 임기초반인 2014년에 정국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정확한 공약이 유권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왜 그럴까. 우선 유권자에게 공약을 정확하게 빨리 전달하도록 강제할 제도가 없다. 공직선거법 66조에 후보자에게 공약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면서 목표, 우선순위, 이행절차, 이행기간 등을 넣으라고 했지만 선거에 임박해서야 매우 두루뭉술한 내용으로 채워지기 일쑤였다.

특히 지방공약은 대규모 건설사업이 포함돼 있으면서도 '어떻게'는 생략됐다. 재원, 기간, 방법 등을 내놓지 않은 채 신용카드 쓰듯 일단 확 질러놓은 모양새다.

중앙선관위는 오래전부터 매니페스토(정책선거)를 유도해 왔다. 유권자들이 정책을 보고 후보자를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에 후보자와 정당의 공약을 게시할 수 있는 인터넷사이트를 열어놨다. 선거 한달전에 후보자로부터 '10대 공약'을 받는다. 그 안에는 현황과 문제, 목표, 이행절차와 이행기간, 재원조달방안이 한 공약마다 한 장에 정리돼 있다. 여러번 읽어봐도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선관위 관계자는 "10대 공약 제출은 30일전에 받지만 의무회돼 있지 않아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제출하지 않는다"면서 "아직은 정책선거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각 정당 홈페이지도 비슷하다. 정책을 찾아보려는 '행동하는 유권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공약에 관심을 갖고 있더라고 공약을 찾다가 쉽게 지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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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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