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투자자 권리보호│① 한미약품 미공개정보이용 사건

기관투자자는 무혐의, 초짜들만 걸렸다

2017-05-25 10:49:44 게재

투자자들, 부당이득행위자 상대 소송 포기 … 회사 불법행위 입증해야 배상 가능

▶"[갈길 먼 투자자 권리보호 - ①한미약품 사건] 공매도세력·기관 빠지고 개미만 당해" 에서 이어짐

 검찰은 한미약품의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긴 21명을 기소했다. 10명을 재판에 회부했지만 11명은 약식기소인 벌금형으로 끝냈다. 이들 대부분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도해 손실을 회피했다. 실제 이득을 챙긴 금액은 개인적으로 3000만~4000만원 정도다. 한미약품 주식 매도로 수십억원을 챙긴 공매도 세력의 혐의를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악재성 공시가 나온 당일 한미약품 주식 공매도 수량은 5만769주로 같은 달 1~28일 하루 평균 공매도 거래 규모인 1만2996주에 비해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의혹이 컸다.


윤제선 변호사는 "공매도 세력이나 기관투자자들이 적발됐다면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다 빠져나가고 금융당국과 검찰에 걸린 사람들은 다 초짜뿐"이라며 "결국 회사를 상대로 늑장 공시에 따른 손해배상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상까지 '험난한 길' 예고 = 금융당국은 한미약품이 고의적으로 공시를 늦게 하지는 않았다고 보고 있다.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는 한국거래소 공시 규정에도 위반사항은 아니다.

한국거래소 공시 규정에 따르면 '기술 도입·이전·제휴 등과 관련한 사항'은 자율공시 대상으로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2일 이내에 공시하면 된다. 한미약품은 8500억원대 기술 수출 계약 해지를 지난해 9월 29일 오후 7시 6분에 통보받았고 공시는 다음날 오전 9시 29분에 했다. 14시간이 지났지만 2일 이내에 한 공시라서 규정 위반은 아니다.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투자자들이 '회사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자본시장법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어 인과관계 입증이 비교적 쉽다. 공매도 세력이 검찰수사에서 드러났다면 투자자들이 매수한 시점에 주식을 판 공매도 세력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배상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늑장 공시'에 관한 부분은 민법상 손해배상에 해당되기 때문에 투자자와 회사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공시 지연'의 의도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요한 기술수출 계약 취소 건이라 거래소에 방문하고 협의 하에 진행한다는 회사 원칙에 따라 진행했다"며 "당시 불성실공시법인 가능성이 제기돼 내부적으로 그 부분을 협의하느라 늦어졌고 업무처리 과정에서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검찰이나 금융당국 조사에서 한미약품의 위법행위가 드러났다면 투자자들은 조사·수사기록을 바탕으로 손해배상을 강하게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투자자들이 법정에서 회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발생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회사의 고의나 과실을 밝혀내려면 내부 문건 확보가 중요한 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힘겨운 싸움이 될 전망이다.

투자자들 '증거 확보' 방안 마련해야 = 법조계에서는 투자자들이 회사 내부의 자료 등을 받아낼 수 있는 '증거 확보' 수단인 '증거개시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대부분의 증거를 회사가 갖고 있는 등 증거의 편중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디스커버리제도(증거개시제도)는 소송당사자가 상대방으로부터 사건과 관련된 문서, 자료, 물건 등을 수집할 수 있고 증인에게는 증언녹취서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 있는 증거개시제도를 통해 양측이 대등하게 다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행 민사소송법에도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이 있다. 하지만 해당 명령에 불응하더라도 제재할 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송 상대방인 회사가 가진 정보나 금융감독당국이 갖고 있는 자료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금융감독당국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 채 소송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증거자료들이 공개될수록 투자자들이 보다 쉽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질서교란행위 무더기 제재했지만 … = 금융당국은 한미약품의 미공개정보를 내부자로부터 직접 듣지 않고 건네 들은 2차 이상 정보수령자들에 대해 24억원의 과징금 제재를 내렸다.

금융당국은 손실회피 또는 부당이득 금액의 최대 150%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차 정보수령자는 125%, 3차 이상 정보수령자는 100%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 2015년 7월 시장질서교란행위 처벌 제도가 마련된 이후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된 첫 사례다.

하지만 손실을 입은 투자자의 배상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회사 내부자나 이들에게 미공개정보를 직접 들은 1차 정보수령자는 형사처벌과 함께 자본시장법상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지만 시장질서교란행위자는 대상이 아니다. 민법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공개정보이용 사건에 대해 2차 이상 정보수령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SNS를 통해 정보가 빠르고 광범위하게 유포돼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공개중요정보를 알지 못하는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번에 적발된 시장질서교란사범들은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지인에게 미공개정보를 빠르게 전파했다. 가장 많은 과징금인 13억4520억원이 부과된 전업 투자자 A씨는 여러 경로를 거쳐 정보를 받은 5차 수령자다. 일부 행위자는 이렇게 전달받은 정보로 이득을 취하거나 손실을 회피하는 것이 위법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한편 개인 투자자 B씨는 "C증권 PB가 한미약품의 호재를 거듭 강조하며 주식매수를 강력히 권유해서 어쩔 수 없이 매수했다가 손실을 봤다"며 C증권과 해당 PB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올해 1월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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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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