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원기 전 국회의장

"권력분산 없는 지방분권은 의미 없어"

2017-08-24 11:30:19 게재

"대통령이 앞장 서면 오해"

"단계마다 국민여론 수렴"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비친 '2단계 개헌론'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를 바꾸지 않고 기본권 강화나 지방분권 등만 남은 개헌안을 먼저 통과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여야 원내대표와의 회동과 이달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권력구조나 선거구 개편 등 첨예한 부분이 합의되지 않으면 기본권, 지방분권 등 합의된 것만 담은 개헌안을 먼저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취지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진 이의종

김 의장은 23일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가진 내일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방분권도 기본권 확대도 검찰 등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공동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의장은 개헌 성공을 위해서는 국민과의 부단한 소통, 대통령과 정부의 협조, 여야의 타협 등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나 대통령이 개헌에 앞장서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대통령이 생각하기에 너무 더디고 마땅치 않는 점이 있어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주문했다.

■ 1987년 이후 개헌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뭔가.

지금까지의 9번 개헌이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더 확장하거나 연장하려는 목적으로 밀어붙인 개헌이다. 국민들의 동의 속에서 한 것이 아니고 저항 속에서 한 개헌으로 국민들이 개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래서 국민적인 동의를 얻을 수가 없었다.

개헌하려면 국회에서 의석분의 2 가 찬성을 해야 하는 점도 있다. 사실상 여야 모든 정당이 합의를 해야 한다. 우리 정치가 대화와 타협, 협상의 정치형태가 아니고 올 오어 나씽(all or nothing)의 전투적인 정치행태이기 때문에 모든 정당이 합의하기가 사실상 어려웠다.

■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안을 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통령이 반대하면 절대 개헌이 안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야당이) 찬성할 수 있겠나. 개헌에 대한 국민인식이 아주 안 좋아서 대통령이 개헌에 앞장서면 잔뜩 오해가 쌓이고 의심하게 된다. 마음속으로 찬성만 하지 나서지는 마라. 대통령이 제안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으니까 제안은 좋고 개헌안에 대해서 정부가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정부나 대통령이 앞장서는 것은 좋지 않다. 국회 개헌특위 중심이 되어 개헌작업을 하는데 협력하고 그 방향이 대통령 생각하기에 너무 더디고 마땅치 않는 점이 있어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좋다.

■ 2단계 개헌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세계에서 유례없이 집중된 대통령 권한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어떤 개혁도 의미가 없다.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권력이 분권되지 않고는 그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기본권 확대나 지방분권도 검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군대 감사원 등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는 어렵다.

■ 적절한 국민여론 수렴방식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개헌이 부정적으로 비쳐진 것이 국민과 상관없이 정치놀음을 해서 그렇다. 과거처럼 정치권끼리 합의를 도출하면 국민이 따라올 것이라는 사고 자체를 끊어야 한다.

모든 단계마다 국민여론을 다양하고 광범하게 듣고 수렴하는 등 충분한 노력을 같이 해야 한다.

■ 국민의 의견을 묻는 원탁토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경청하는 장은 충분히 만들되 광장에 맡길 수는 없다. 직접민주주의를 존중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가지고 개헌문제를 다뤄야 한다. 정치권에 맡겨놓으면 정치적 이해관계로 처리할 것이라는 불신 때문에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는데 촛불시민혁명이후에는 정치권도 감히 그러질 못하리라고 본다. 국회가 헌법에 따라 처리하고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따라서 완성할 생각을 해야지 대의정치 의회 민주주의라고 하는 기본틀을 무시해선 안된다.

■ 권력구조는 어떻게 바꾸는 게 적절하다고 보나.

국회가 극단적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내각책임제는 말도 꺼내기 어렵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는 게 개헌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4년 중임제도 한번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현 대통령 권력을 그대로 놔두면 단임이 주는 폐해보다 더 크기 때문에 분권이 전제가 되면 4년 중임도 가능하다고 본다.

■ 선거구 개편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현행 소선거구제는 유력한 당끼리 지역에 따라서 의석을 독점하는 그래서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더 심화시키고 지역적으로 유리한 지역 정권을 더 길게 장악하도록 하는 부작용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일리가 있다.

■ 권력구조 선거구 개편 등에 이견이 많다. 조율이 되겠나.

국회의원 한명한명이 정당 함정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모든 정책문제가 여야로 갈려서 소통도 안되고 사실상 설득노력도 없는 게 현 정치행태다. 개헌은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야 한다. 저쪽 의견이 내 것보다 불합리할 것 같아도 일부라도 바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야 한다. 개헌에 있어서는 당론을 너무 내세우는 것을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

■ 국민 참여가 중요해 보인다.

정치가 바꿔지려면 기본 틀이 개선돼야 한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이 바뀌어도 (실질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참여를 해야 한다. 개헌은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기본틀이다. 국민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개헌 운동에 참여도 하고 그런 속에서 개헌이 돼야 개헌이 제대로 되는 것이다. 87년 개헌의 단점이 국민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당간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번엔 처음으로 국민참여가 되는 개헌이 될 것이다. 개헌이 가능한 절호의 기회가 처음 온 것이다, 성공하려면 국민들이 참여해야 한다.

[관련기사]
[새 시대 새 헌법] 상시 국회·상시 청문회, 예산법률주의 도입 '공감대'

김종필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