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청와대 김이수·박성진 사태 불렀다

2017-09-14 11:05:05 게재

총리인준·추경 교훈 간과

여당에 인사·법안 책임 넘겨

13일 오전까지도 여당소속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위원들은 '청와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전날 오전에도 만났지만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후보자에 대한 입장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부적격'엔 이견이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임위원장인 국민의당 장병완 의원이 표결을 해서라도 청문보고서를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고 정의당을 포함한 야 4당이 당론으로 '임명반대'를 정해놓은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결국 야당들이 '부적격'의견을 담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도록 퇴장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여당 의원들은 '부적격'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면 왜 안 되는지, 왜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해야 하는지를 끝까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청와대의 심기'를 위한 고민과 행동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된 지명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오래됐다. 청와대는 "본인의 해명을 듣고 여론추이를 보자"고 했다. 박 후보자의 기자회견이후 여론이 더 악화되자 "청문회까지 보자"로 전략을 바꿨다.

정의당을 포함한 야 4당이 '반대'입장을 당론으로 제시하고 여당에서도 다양한 경로로 '부적합'의견을 전달했지만 청와대는 해법을 내놓지 않았다. '지명 철회'나 '자진 사퇴'카드는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에 쏟아질 비난과 짐을 여당에게 떠넘긴 것으로 해석된다.

여당 의원들의 불만이 끓어올랐다. 산자위소속 한 여당 의원은 "부적격으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면 청와대에 책임을 떠넘기는 건데 여당에서 그럴 수는 없고 그렇다고 부적격이 안되는 이유를 대기도 어렵고 참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안 부결의 책임론도 표 계산이나 단속을 제대로 못한 여당 지도부로 향했다. '캐스팅보트'인 국민의당 분위기가 한 쪽으로 잡혀있지 않은 상황에서 본회의에 직권상정됐는 데도 부결이후 나온 청와대의 첫 입장은 "상상도 못했다"였다. 그러고는 모든 책임을 국회와 국민의당에 전가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국민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정질서를 정치적으로 정략적으로 악용한 가장 나쁜 사례"라고도 했다.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여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도 비쳤다. 같은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야당과의 협상은 일단 원내대표"라며 "원내대표에게 전폭적으로 일임했다"고 말했다. "야당과의 협상 최전방은 원내대표이기 때문에 원내대표를 통해서 (청와대 입장을) 얘기했다"고도 했다.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은 행정부인 청와대이면서 채택과 통과의 책임을 전적으로 입법부의 일부인 여당에 넘긴 꼴이다.

비문계의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이낙연 총리 인준과 추가경정예산(추경) 심의 과정에서 여소야대와 다당제에 따른 소수여당의 한계를 확인했는데도 청와대가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서 "청와대가 직접 야당을 설득하고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국회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법안과 인사청문요청서를 제출해 놓고는 여당에게 '통과의 의무'를 주는 방식이 과거 왜곡된 당청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도권 초선의 친문계 의원은 "문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민주당정부'를 주장하는 문재인정부에서는 현재의 청와대와 민주당의 관계를 (상하관계로)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상 여당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거나 다른 입장을 내기는 어렵다"면서도 "대통령도 입법부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여당도 대통령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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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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