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후보와 어떤 관계냐" "그분 잘 모른다"

2017-09-14 12:03:34 게재

현직 판사 불러 정치공세하려다 망신당한 야당 … 절제된 답변에 말문 막히자 헛웃음·호통·질문포기

현직 판사를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해 정치공세를 폈던 야당이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13일 국회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참석한 오현석 판사는 야당 의원들의 정치공세성 질문에 절제된 답변으로 말문을 막히게 했다.

야당 의원들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헛웃음을 짓거나 호통을 치고, 질문을 포기하기도 했다.

13일 열린 국회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오현석 판사가 손금주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손 의원이 "양 대법원장의 기념사에 대한 입장을 말해달라"고 하자 오 판사는 "대법원장의 말씀에 개인 의견을 말하는 것은 부적절해 양해 부탁드린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그러자 손 의원은 흥분해 "양해할 수 없는데"라며 반말을 했다. 사진 국회 인터넷중계방송


현직판사로는 최초로 증인 채택 = 오 판사는 현직으로는 처음으로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돼 국회 증언대에 섰다. 그의 증인 채택은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 민주당 전해철 간사는 "야당이 증인 채택에 동의하지 않으면 청문회를 할 수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해줬다"고 말했다.

야당이 오 판사를 증인으로 주장한 사유는 그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 때문이다. 오 판사는 8월 30일 '재판과 정치, 법관 독립'이란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렸다. 이 글을 일부 보수언론이 '판사가 대법원 판결에 따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며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또 오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고, 사법부 블랙리스트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지며 야당은 그가 김명수 후보자를 지원하려 했다며 증인으로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오 판사는 야당 의원들의 쏟아지는 공세성 질문에 차분하게 사실관계를 바로 잡으며 설명해 의원들을 머쓱하게 했다.

사실관계 정확히 수정하며 '김빼' =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명성을 얻었던 자유한국당 장재원 의원은 첫 질문부터 제동이 걸렸다.

장 의원이 "팩트에 대해서 답변해 달라"며 "김명수 후보와 어떤 관계냐"고 추궁했다. 오 판사가 "질문의 취지를 잘 모르겠다"고 하자 장 의원은 "친밀도"라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오 판사는 "친분이 없다"고 답했다. 다시 장 의원이 "존경하냐"고 묻자, 오 판사는 "그분을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다시 "생각이 같냐"고 묻자 역시 "잘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 의원이 "잘 모르는데 단식을 그만하라니까 그만 합니까"라고 김 후보자가 단식 중단을 요청했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오 판사는 "사실과 다르다"고 답했다. "어떻게 다르냐"고 재차 묻자 "개인적 친분이 없고, 또 그분께서 중단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엔 장 의원이 "SNS에 '재판이 곧 정치'란 글을 올린 적이 있죠"라고 물었다. 이번에도 오 판사는 "아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글을 올린 적이 없어요"라고 재차 묻자 "SNS가 아니라 법원내부 법관 전용게시판에 글을 쓴 사실이 있다"고 답했다. 말문이 막힌 장 의원이 "그 글에서 오 판사가 김 후보자를 지지하는 듯한 주장을 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 판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예비판사 시절에 배운 것을 글에 적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소기의 답변을 끌어내지 못한 장 의원은 "오 판사의 글에 대한 법조인 선배들의 칼럼을 읽어주겠다"며 신문칼럼을 읽다가 질의시간을 끝냈다.

대법 판결 무조건 따르라는 야당 = 이번엔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언론에 보도된 오 판사의 글을 읽어주며 "본인 글과 다른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 판사는 "일부분만 보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의원이 재차 "다르지는 않죠. 없는 사실이 쓰여져 있지는 않죠"라고 물었다. 이번엔 "일일이 다 읽어보지는 못해서 모르겠다"고 답했다.

전 의원이 다시 "본인의 글과 언론 보도내용이 취지상 다름이 있냐"고 묻자, 오 판사는 "글 취지가 다르게 보도됐다는 선배 판사들의 지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보도되지 않았다"고 간접적으로 답했다.

전 의원은 이번엔 말을 돌려 "법이 사회현실을 따라가야 하느냐, 아니면 사회현실을 리드해야 하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여기에 대해선 "내가 섣불리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을 하지 않았다. 전 의원 역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질문을 마쳤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야당 의원의 왜곡된 질문에 대해 바로 잡았다. 이 의원은 "야당 의원들이 물을 때 중요한 것을 빼고 물었다"며 "오 판사가 글에서 '대법원의 해석을 추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을 하기 전에 '양심에 따른 판단없이'란 전제가 있는데 이를 생략해 해석에 큰 차이가 생겼다"고 말했다.

오 판사도 "그렇다"며 "나는 헌법 103조를 말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최고법원의 판례를 존중하고 따른다는 마음가짐은 변함없지만, 하급심 판사가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면 안된다고 사법연수원에서 배웠다"며 "여성 종중원 사건에서도 시대가 바뀌어 하급심이 대법원 판례와 다르게 판결했고, 결국 대법원 판례도 변경됐다"고 지적했다.

짧고 정확한 답변으로 예봉 피해 =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도 첫 질문부터 막혔다. 그는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요구하며 단식을 했냐"고 물었다. 이에 오 판사는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위해 단식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곽 의원이 다시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을 만나고 나서 단식을 중단했지요"라고 묻자 "면담 몇시간 전에 더 이상 단식하기 어렵다고 주변에 알렸다"고 답했다. 곽 의원이 "김 차장이 그래서(단식중단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냐"고 묻자 "주변에 알린 것을 알고 왔는지 모르고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곽 의원은 직접적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이 대법원장 후보자가 됐으니 이제 단식을 안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추궁하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곽 의원은 오 판사와 김 후보자를 연결시키기 위해 "김 차장으로부터 김명수 후보자가 안부를 묻는 것을 들었나"라고 묻자 "잘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곽 의원이 "있었다는 것이냐 없었다는 것이냐"며 짜증을 내며 질의하자, 오 판사는 차분한 어조로 "잘 듣지 못했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문이 막힌 곽 의원이 여호와의 증인 관련한 병역법 위반 관련한 판사들의 무죄판결을 언급하며 "1심에서 무죄를 받으면 2심가고 3심가서 깨지고 다시 재판하면 4번 재판하지요"라며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오 판사는 "판사로서 가정적 질문에 답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급기야 곽 의원은 짜증을 내며 "증인같은 분들이 이렇게 마음대로 재판을 해 당사자들이 4번, 5번씩 재판받으러 다닌다"고 질책하자 오 판사는 "그런 취지에서 올린 글이 아니다"라며 차분히 반박했다.

질의하던 의원 흥분해 반말·질책 = 국민의당 손금주 의원도 공세에 가담했다. 손 의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법원의날 기념사를 읽어주며 "최근 법원의 재판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 빈발하고 있다는 발언에 대한 입장을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오 판사는 "오늘은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다. 다소 어려운 질문이라 개인적 소견을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니 양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에 손 의원은 "양해할 수 없는데..."라며 흥분해 반말을 했다. 그는 이어 "법원내부 통신망이라도 기사화 될 것을 알고 쓴 글 아니냐"라고 물었다. 오 판사는 "아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손 의원이 재차 "정치적 목적을 갖고 쓴 글이 아니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라고 부인했다. 손 의원이 다시 "내부 판사들 사이에 의견개진을 위해 쓴 글이냐"고 묻자 "특별한 목적을 생각하고 쓴글이 아니라 제 글 자체가 그런 글이다"라고 답했다.

말문이 막힌 손 의원이 헛웃음을 지으며 "증인은 법관의 직업적 양심과 법관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혼동해서야 되겠느냐"고 물었다. 오 판사는 "제 글은 그런 취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흥분한 손 의원이 다시 "양 대법원장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오 판사가 "대법원장 말에 개인의견을 덧붙이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손 의원은 "더 이상 신문할 필요가 없다"며 신문을 중단했다.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은 주호영 위원장이 "질의를 하겠느냐"고 묻자 "하지 않겠다"며 아예 신문을 포기했다.

현직 판사를 불러 정치공세를 하려던 야당 의원들이 백기를 든 셈이다.


[오현석 인천지법 판사의 코트넷 글 전문│재판과 정치, 법관 독립]

요즘에 재판과 정치의 관계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과거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에 법원 판사들이 법률기능공으로 자기 역할을 스스로 축소시켜놓고 근근이 살아남으려 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심리적 작용이 있었을 것입니다. 즉, 정치에 부정적 색채를 씌우고 백안시하며 정치와 무관한 진공상태에 사법 고유영역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고착시키며 정치색이 없는 법관 동일체라는 환상적 목표 속에 안주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한 고착된 구시대 통념을 자각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했습니다.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 본연의 역할은 사회집단 상호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얼핏 존경할 만하게 보이는 훌륭한 법관이라 하더라도 정치 혐오 무관심 속에 안주하는 한계를 보인다면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따라서, 개개의 판사들 저마다의 정치적 성향들이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제는 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법관 독립을 보장함으로써 사법부의 그러한 약간의 다양성(정치적 다양성 포함)을 허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존 본영에 기여할 것임을 우리 사회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갈 방향이라는 자신감을 판사들부터 스스로 견지하면 좋겠습니다. 미성숙한 외부적 여건을 감안하면, 표현에서는 신중하게 할 일이지만, 이해시키고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사람은 복제 로봇이 아닌 이상, 판사 개개인은 고유한 세계관과 철학, 그 자신만의 인식체계 속에서 저마다의 헌법해석, 법률해석을 가질 수밖에 없음이 자명합니다. 누구나 서로 다른 빠르기의 시간좌표계를 가진다는 진실을 밝힘으로써 상식을 반성하고 통념을 극복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비슷합니다. 물론 광속 미만에서 로렌츠 수축이 미미하듯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해석의 차이가 경미하겠지만요.

독립은 의무이기도 합니다. 판사는 양심껏 자기 나름의 올바른 법률해석을 추구할 의무가 있고 그 자신의 결론을 스스로 내리라는 취지가 헌법 제103조에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통념, 여론 등을 양심에 따른 판단 없이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명령이라고 말입니다. 차이와 다양성 자체가 의무일 수는 없지만 법관의 독립을 긍인한다면 다소간의 차이와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파생합니다.

독립은 존재의 참된 본성입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불가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하였고, 임제 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하셨습니다. 그대로 받들기가 정말 어렵지만 무척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현석 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려 논란이 됐던 글을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원문을 게재한다.)

[관련기사]
김명수(대법원장 후보자) 인준, 안갯속으로
무책임한 청와대 김이수·박성진 사태 불렀다
"전관예우 인정하고, 대처방안 마련하겠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장병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