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다산에게 길을 묻다│부산 부산진구 '청소년예술학교' 제6회 다산목민대상 수상

예술교육, 복지의 대상이 되다

2018-03-19 10:15:05 게재

구청 10층 전체 청소년예술학교로

소외계층 자녀들 우선선발해 교육

부산진구청은 늘 주민들로 북적인다. 15층 현대식 건물 곳곳엔 진구 직원들은 물론 하루 수백명의 주민들이 이용한다. 지하 강당에서 1주일에 3회씩 열리는 노래교실에는 매번 500명씩 모여 목청껏 소리를 낸다. 11층 평생학습센터에서는 50개 이상의 강좌가 열린다. 수강생이 1000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또 한 곳, 건물 10층 1037㎥ 전체가 부산진구청소년예술학교다. 각종 악기와 글쓰기 등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학생들로 늘 시끌벅적하다.

부산시 부산진구청소년예술학교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1만3000명의 초·중학교 학생들이 예술을 배웠다. 이 가운데 일부는 숨은 재능을 찾고 발전시켜 예술고와 예술대에 진학했다. 사진은 지난해 바이올린과 플루트(아래 왼쪽) 연주회 모습과 미술반 수업 장면(아래 오른쪽)이다. 사진 부산진구 제공


10년간 1만3000명 배출 = 부산진구는 관상복합 건물인 15층 규모 청사 일부를 구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키로 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청소년예술학교 설립이었다. 민간임대 사무실로 사용하던 청사 10층 전체를 비운 뒤 1년여 준비 끝에 2007년 7월 28일 청소년예술학교를 개교했다.

부산진구 청소년예술학교는 지자체가 직접 예술교육을 하는 유일한 시설이다. 올해로 설립 11년째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무료로 예술과목을 가르친다. 문학과 미술, 서예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단소 발레 등 10개 과목이다. 1·2학기와 여름·겨울방학 4학기를 운영하는데 연간 교육생이 1260여명이다. 그동안 누적 수강생은 1만3000명을 넘어섰다. 10년째 매년 청소년예술제를 개최했고, 공연 80회, 전시 1225점의 실적도 올렸다. 바이올린과 플루트 등 5개 부문에서 청소년음악콩쿠르 수상자가 나왔다.

구립 라온소년소녀합창단도 청소년예술학교에서 운영한다. 단원은 80명이며, 1년에 10회씩 공연을 연다. 최근 지휘자를 모집하는데 무려 53명이 지원할 만큼 유명해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학생들의 출석률이다. 무료 수업이다 보니 빼먹은 아이들이 많을 법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곳 학생들의 평균 출석율은 90%를 넘는다. 전진경(77) 명예교장은 "아이들이 수업에 빠지지 않는 것은 내용이 그만큼 충실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최고 수준 강사진 구성이 성공 열쇠 = 강사진만 봐도 전문 예술학교 냄새가 물씬 난다. 일반 교양강좌를 운영하는 곳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청소년예술학교 명예교장인 전진경씨는 1940년생 피아노 연주자다. 미국 시카고 루즈벨트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부산예고와 부산예술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했는데 2012년 말 하계열 구청장의 제안으로 이곳 청소년예술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전 명예교장은 "5년 전 하계열 구청장이 직접 저에게 1년간 피아노를 배웠는데 주 2회씩 하는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다"며 "구청장의 예술에 대한 의지를 보고 나니 청소년예술학교 강의 제안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강사들 한 사람 한 사람 이력도 만만찮다. 미술을 가르치는 박경미씨는 개인전 10회 기획초대전 100회 경력의 소유자고, 구해인씨는 부산시립시민도서관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강사로 활동했던 베테랑이다. 음악이야기 과목을 맡고 있는 이승재씨는 독일 트로싱엔 국립음대를 졸업했고, 플루트를 가르치는 김선영씨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학·석사를 받았다. 이들 4명은 2007년 청소년예술학교 개원 때부터 함께 한 강사들이다.

이 밖에도 바이올린 강사 미카씨는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글린카 국립음악원 출신이고, 첼로 강사 한학수씨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국립음대에서 공부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주은정씨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마스터 과정을 수료했다. 문학을 가르치는 한 아씨는 MBC창작동화 단편부분 대상을 받았다. 그가 쓴 단편동화 '바다건너 불어온 향기'는 6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수록됐다. 단소 강사 신희재씨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고 난계국악경연대회 일반부 금상을 수상한 경력의 소유자다. 발레반 김옥련씨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자기 이름의 발레단을 운영하고 있는 전문가다. 서예를 가르치는 도미숙씨는 화려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고, 10년째 서예원을 운영하고 있다.

심화반 확대해 전문 예술가 양성 = 하계열 구청장은 강사진 구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다른 지자체들도 청소년예술학교를 열고 싶어 하는데 강사진을 구성하지 못해 포기하는 걸 여러 차례 봤다"며 "이 예술학교 운영은 처음부터 지역의 우수한 인재 풀을 기반으로 했다"고 말했다.

부산진구는 이 대목에서 한 번 더 욕심을 낸다. 단순한 교양 수준의 교육이 아니라 전문가 수준의 예술지도다. 기초교육을 마친 청소년들이 예술가로서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말 그대로 전문 예술인을 키워내는 것이다. 우선 첫 걸음으로 지난해 8월부터 대학교수와 전문작가 등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문학 관련 심화반을 운영하고 있다. 바로 청소년문학아카데미다. 시·소설·영상 3개 강좌를 운영하는데 그동안 기초과정에서 예술적 재능을 찾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심화 교육을 시킨다. 각 반 15명씩 45명이 이곳에서 전문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부산진구는 앞으로 음악과 미술 분야에도 심화반을 확대해갈 계획이다. 이곳에서 슈베르트 음악을 배우고 있다는 황장웅(중3) 학생은 "이곳 수업은 정말 전문적인 선생님께 배운다는 생각이 든다"며 "심화반이 생기면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이곳에서 배운 학생 중 27명이 전공을 이어가 예술고에 진학했다. 적잖은 숫자다. 이 학생들에게는 부산진구장학회와 연계해 장학금도 지원한다. 장학회는 1996년 진구가 2억원을 출자해 만들었는데 지금은 69억원의 기금을 만들어 지역 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예술 접할 기회 균등해야 = 처음에는 지자체가 사교육을 지원·육성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거꾸로 사교육 시장을 빼앗는다는 공격도 받았다. 직원들의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예술교육을 복지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이런 반대들을 물리쳤다.

실제 청소년예술학교는 문화가정, 다자녀가정, 차상위계층 청소년들에게 우선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악기 구입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바이올린 14대, 첼로 8대, 플루트 5대를 구 예산으로 구입해 무료로 빌려준다. 하 구청장은 "부산진구에서만큼은 가정 형편에 구애받지 않고 어린 학생들이 마음껏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게 청소년예술학교을 운영하는 이유"라며 "꼭 전문 예술가의 길을 가지 않더라도 예술에 대한 소양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많은 학생들로 인해 우리가 사는 지역의 문화예술 수준이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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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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