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보상받고 쫓겨난 세입자 '결사항전' 내몰려

2019-01-17 11:34:59 게재

용산참사후 바뀐 건 휴업보상 한달 늘었을 뿐 … 영업손실 보상 매우 적어, 권리금 보상은 없어

재개발, 재건축, 도시재생 등의 이름으로 노후지역 개발사업이 공익사업으로 정의돼 수용권이 주어지고 있다.

이들 도시개발사업들은 노후지역 정비란 '공익'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면에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노리는 대형 건설회사와 민간조합의 '사익'이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재건축·재개발사업 등은 '공익으로 포장된 수익사업'일 뿐이며, 여기에 공공의 목적을 위한 수용권 부여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권미혁, 박주민, 윤소하, 정동영 의원과 용산참사10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가 공동주최했다. 사진 장병호 기자


수용권 행사과정에서 가장 갈등이 첨예한 것 가운데 하나는 자영업자의 영업손실 보상이다. 헌법 제23조는 공용수용시 '정당보상'을 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실제 보상액은 매우 적은 게 현실이다.

공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인데도 수용권을 행사하고, 그것도 적은 보상으로 내쫓겨야 하는 자영업자들, 특히 세입자 입장에서는 평생 쌓은 재산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세입자들의 '결사항전'은 구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용산과 횡성군 주거이전비 똑같아" = 생활터전의 안정적 이전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생활보상 관련 규정은 실제 손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 시행규칙 제46조와 제47조는 폐업보상과 휴업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폐업보상은 2년간의 영업손실과 영업시설이전비를 보상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이전이 어려운 경우 등 수급 요건이 매우 까다로워 인정되는 경우가 극히 적다. 대부분 휴업보상이 이루어진다.

휴업보상은 해당 영업이 어떠한 종류인지, 장소나 영업기간 등을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휴업기간을 4개월 이내로 적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용산참사 이전에는 휴업보상이 3개월이내였으나, 2014년 10월 시행규칙 개정으로 1개월이 늘어 4개월이 됐다.

한국부동산연구원 박성규 박사는 "통계청 기업생멸통계에 따르면 2013년 통계자료에서 음식업·숙박업이 5년간 생존할 확률이 17.7%에 불과하다. 새롭게 음식업과 숙박업을 시작하는 업체가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다는 의미"라며 "자영업의 폐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업종 및 지역별로 휴업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리금이 있는 상가의 경우는 이에 대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2015년 상가임대차 보호법이 개정돼 권리금의 회수기회를 보호해주는 등의 장치가 생겼지만, 토지보상법에는 이에 대한 규정이 없다.

주거이전비도 비현실적이다. 주거용 건물의 소유자에게는 2개월분, 세입자에게는 4개월분의 주거이전비를 지급한다. 하지만 서울 용산구나 강원도 횡성군, 경북 영덕군의 주거이전비가 모두 같다.

토지보상법 시행규칙 제54조는 '도시근로자가구의 가구원수별 월평균 명목 가계지출비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거주여건이나 주거비 차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주민 재정착하는 개발돼야" = 이 때문에 푼돈을 받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의 결사항전이 끊이질 않는다. 최근 청량리4구역 재개발현장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세입자 5명은 지난 13일부터 5일째 폐상가 옥상에서 쇠사슬을 목에 묶고 '강제철거를 하면 떨어지겠다'며 추가보상과 퇴거기간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588집창촌비대위' 조철민 위원장은 "쥐꼬리만큼 적은 보상을 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해 몰아내려 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15일 국회에서 열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전국철거민연합 백채현 청량리 위원장은 "주민과 사전협의 한번 없이 진행된 재개발 사업과 강제이주, 강제철거에 반대해 주민들이 생존권 보장을 주장하며 투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20일 용역깡패 200여명이 롯데건설 도움으로 생가에 진입해 오함마와 빠루로 때려부수고 세입자들을 향해 소화기를 난사하며 돌진했다"며 "쓰러진 노인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건설이익을 위한 개발이 아닌 낙후된 지역을 원주민에게 쾌적한 공간으로 돌려주는 개발, 재정착이 우선되는 개발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윤헌주 위원장은 "언론들은 이미 법원에서 결정난 사항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인들이 떼를 쓰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며 "수협이 일방적으로 현대화를 추진해 새 건물을 짓고 상인을 토끼몰이 하듯 몰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민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신시장을 건설했다는 취지는 없고 오로지 구시장 부지에 복합리조트, 테마파크 등을 건설해 부동산을 개발하겠다는 의도였다"며 "주민 한사람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개발사업을 추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2015년 9월부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3년 넘게 생존권투쟁을 벌이고 있다.

◆인권위 "인권친화적 강제집행해야" =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 쌔미 활동가는 파리바게트 효자점, 우장창창, 궁중족발 등의 사례를 거론하며 재개발과정에서 임차상인들이 쫓겨나고 있는 현실을 고발했다.

그에 따르면 파리바게트 효자점은 17년째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건물주가 건물노후로 인한 리모델링을 이유로 퇴거명령을 했고, 명도소송에서 패소해 권리금 회수기회를 박탈당했다. 2016년 1월 50여명의 용역들이 강제집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유리가 깨지고 수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장창창의 경우는 2010년 11월에 2년 임대차계약을 하고 권리금 2억7500만원과 인테리어비용 8000만원 등 약 4억4000만원을 투자해 점포를 꾸몄다. 하지만 2년이 채 되지 않은 2012년 5월 주인이 바뀐후 기존 계약은 무효라며 퇴거를 요청했다. 이후 새롭게 2년 임대계약을 체결했지만 주차장 부지 불법 용도변경 논란이 벌어져 명도소송이 제기됐다. 계약종료 후에도 갱신요구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났고, 용역 40여명을 동원한 강제철거가 벌어지기도 했다.

궁중족발의 경우는 급격한 임대료 인상에 따른 갈등으로 명도소송이 진행됐다. 임차인이 패소했고, 이후 강제집행과정에서 임차인 손가락 4개가 잘리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후에 강제집행이 계속됐고, 급기야 임차인이 건물주를 망치로 때리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월계2 인덕마을 재건축정비사업구역 김진욱 위원장은 "2016년 4월 인덕마을에서 불법강제집행과 집단폭행사건이 있었다"고 고발했다. 그는 "법원이 대상건물의 2층과 3층, 옥탑방 강제집행을 허가했으나, 집행시작과 함께 용역깡패 300여명이 아직 명도소송 중이던 1층 이주대책위원회 사무실 셔터문을 부수고 무단침입해 집기들을 부수며 불법집행을 시작했고, 주민들의 저항으로 큰 혼란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역깡패 100여명은 마치 인간사냥꾼처럼 건물 내부에 있던 주민들에게 소화기를 뿌리며 무차별 폭행을 가해 주민들을 밖으로 끌어냈다"며 "집행권원이 없는 1층과 4층도 강제집행을 했고, 이 과정에서 주민 24명이 열상, 코뼈골절, 골반뼈 골절 등 전치 10주에서 2주의 부상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폭행을 당한 주민들은 조합장과 집행관, 이주업무를 담당했던 법무법인 변호사와 실무자를 특수상해 교사 혐의로, 용역 90여명은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4월 10일 침해구제 결정을 통해 당시 담당 경찰은 경고조치하고, 경찰청에겐 인권교육과 강제집행 지침마련과 인권교육 실시를 권고하고, 서울북부지방법원장에겐 인권친화적인 집행수행에 대한 지침마련과 집행관 교육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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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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