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 상가세입자 끝까지 생존권 싸움

2019-01-17 11:34:59 게재

영업손실 보상금 재정착에 턱없이 부족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 철거민 농성 강제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진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다. 용산참사 이후 '사람은 없고 개발만 있는 도시개발'에 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철거민 문제는 여전히 재개발·재건축지역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반발하며 죽음을 불사하고 끝까지 저항하는 사람들은 용산참사가 일어난지 10년이 지났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상가세입자 끝까지 저항 = 용산참사 당시 남일당 건물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참사를 당한 사람들은 모두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에 소속된 상가세입자들이었다.

용산4구역 철대위 23세대의 업종은 식당이 14세대로 가장 많고 그 외 당구장, 여관, 비디오·책 대여점, 옷가게, 구두공장, 금은방 등 다양하다. 23세대 중 3세대만 용산4구역의 구역지정 공람공고가 시작된 2005년 12월 이후 용산4구역에서 영업을 시작했으며, 사업시행인가일인 2007년 6월 8일 이후 영업을 시작한 경우는 전혀 없다. 참사이전 10년 이상 영업을 하고 있던 장기세입자가 10세대나 되고, 일부 상점의 경우 수십 년 동안 한 곳에서 영업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2017년에 만든 용산참사 백서(용산참사, 기억과 성찰)에 따르면 참사 당시까지 용산4구역에 보상 협의를 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세입자는 전철연 소속의 23세대 이외에도 60세대가 더 있었다. 60세대는 민노당 소속의 세입자거나 보상에 합의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남아있는 경우였다. 이는 상가세입자들의 보상에 대한 불만이 용산참사의 핵심적 배경이었음을 보여준다.

◆부족한 영업손실 보상금 = 이들이 재개발구역을 떠나지 못하고 저항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영업손실 보상금으로는 동일한 수준의 가게 영업을 다른 지역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백서에 나와 있는 2009년 2월 9일 기준 용산4구역 세입자 보상 자료에 의하면 주거세입자에 비해 상가세입자는 보상에 합의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5세대 중 1세대 비율로 보상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사가 발생하기 이전 상가세입자 중 일부는 보상 협의 후 이주했지만, 일부는 생계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남아 있었다. 당시의 영업손실 보상금으로는 동일한 수준의 가게 영업을 다른 지역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용산4구역 철거민 유가족인 정영신씨는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개발지역에서 살고 있었는데 다 나가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살던 사람들 단 한명도 만족해서 나간 사람은 없었다고 저는 확신한다"며 "무섭고, 더럽고, 치사하고, 그리고 가족들이 당할까봐 나간거지. '이정도면 내가 다시 장사할 수 있다'고 나간 사람은 없다"고 증언했다.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사업시행인가 이전부터 보상 협의 시까지 영업한 경우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폐지하거나 휴업함에 따른 영업손실에 대해 영업이익(개인영업인 경우 소득)과 시설의 이전비용 등을 참작해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권리금, 감정평가금액에 포함 안돼 = 당시 그리고 현행 제도하에서 감정평가금액은 권리금을 포함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시설의 감가상각을 고려하기 때문에, 보상금은 세입자들이 인테리어 등으로 지출한 초기 시설투자비에 비해 적은 액수일 수밖에 없다. 당시 상가세입자들에게 제시된 손실보상은 영업지역 이전에 따른 휴업보상금(3개월 평균 소득)과 동산이전비가 전부였다. 이는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를 거의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보상금으로는 다른 곳에서 영업을 새로 시작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와 같은 상가세입자들에 대한 보상 조건은 용산4구역의 상가세입자였으나 조합과 협의 후 가게를 그만두고 조합 소유의 주차장 관리 및 세입자 협상을 돕는 일을 하고 있던 세입자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보상 문제와 관련해서 조합측과 갈등을 겪다가는 자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협의했었다'고 재판에서 증언했다. 상가세입자들은 예상보다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제시된 보상금은 당사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고 한다.

토지 소유주도 아닌 상가세입자였던 철거민들은 개발이익을 누리기는커녕 권리금과 가게 시설,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린 채 3개월치 휴업보상금과 얼마 되지 않는 주거이전비만 받고 쫓겨날 처지가 되자 투쟁에 나섰다가 비극을 맞았다.

특히 상가세입자들은 개발사업으로 단순히 가게를 옮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간 형성된 상권과 단골손님까지 잃는 결과를 떠안아야 한다. 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 김남근 변호사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적용 대상인 재건축에는 주거·상가세입자에 대한 이주대책 수립과 보상금 지급 등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상가세입자는 영업이 중단되는데 아무 보상이 없어 극렬하게 저항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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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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